퀄컴은 지난 달 애플과 2년 여 분쟁을 법정 밖 화해로 끝냈습니다. 격렬하게 싸웠던 애플이 하루 아침에 비즈니스 파트너로 바뀌었습니다. 5G 모뎁칩 확보가 시급했던 애플의 필요를 잘 파고든 덕분이었습니다.
그랬던 퀄컴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소송에서 완패하면서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특히 애플과의 '불공정 거래'가 퀄컴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21일(현지시간) ’특허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판매하지 않는’ 정책을 비롯한 퀄컴의 비즈니스 관행이 독점금지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문제가 된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관행을 수정하라는 강도 높은 이행명령도 함께 발령했습니다. 특히 필수표준특허 라이선스 협상 때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을 적용하는 ‘프랜드(FRAND) 원칙’을 준수하라는 지침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 애플과 계약 내용, 퀄컴엔 불리한 증거로 작용
1심 소송 당시 FTC가 문제삼은 퀄컴의 비즈니스 관행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공급하지 않는’(no license-no chips) 정책
둘째. 인센티브 프로그램 (퀄컴 칩 사용할 경우 라이선스 비용 인하)
셋째. 라이벌 칩셋 업체엔 특허 기술 공여 거부
넷째. 애플과의 배타적 거래.
FTC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토대로 퀄컴을 공격했습니다. 이 때 애플은 중요한 조력자였습니다. 재판 당시 애플과 퀄컴 간의 계약 내용이 쟁점이 됐습니다.
- 애플이 2011년 10월1일부터 2012년 9월30일까지 퀄컴 칩 1억1천500만개를 구입할 경우 퀄컴은 애플에 ‘변형인센티브 펀드(VIF)’ 전액을 지급한다. 만약 퀄컴 칩 구매량이 8천만개를 밑돌 경우엔 인센티브 펀드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 애플이 퀄컴 경쟁사의 모뎀 칩을 탑재할 경우 인센티브 펀드를 하나도 받지 못한다.
이런 조건들은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판결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허 전문사이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루시 고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퀄컴이 2011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애플에 크게 네 가지 종류의 반독점 행위를 했다고 적시했습니다.
첫째. 애플이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모뎀 칩 판매 거부. 심지어 샘플조차 공유하지 않음.
둘째. 인텔이 제공하는 경쟁 표준 말살.
셋째. 애플이 갖고 있는 특허 전부를 크로스라이선스 할 것을 요구.
넷째.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독점 계약 강요. 이 때문에 퀄컴 경쟁사들은 2011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애플에 모뎀 칩 판매를 하지 못함.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그런 업체조차 불리한 계약을 체결할 정도니, 퀄컴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 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FTC가 애플과 공조를 통해 퀄컴이란 대어를 잡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FTC와 퀄컴 간의 소송 공판이 진행되던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애플 역시 퀄컴과 비슷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보조를 맞추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 애플과 합의, 항소심엔 어떤 영향 미칠까
그런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애플이 퀄컴과 합의로 소송을 끝내버린 겁니다. 두 회사는 아예 6년 라이선스 계약까지 체결해버렸습니다. 그 계약이 지난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법원 판결 직후 일부 전문가들은 애플과 퀄컴의 합의가 자동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두 회사 간 합의문에는 FTC 소송에서 퀄컴이 질 경우 계약 조건을 변경한다는 등의 조항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쟁점은 ‘애플 변수’가 항소심 재판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점입니다.
미국 항소심은 법률 적용 문제는 다툽니다. 추가 증거를 제출하지는 않는 게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퀄컴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의 근거가 된 것들 중 상당수가 애플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애플은 화해로 소송을 끝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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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부분이 항소심에선 어떤 변수가 될까요? 애플 때문에 한숨 지었던 퀄컴이 애플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조만간 시작될 퀄컴과 FTC간 항소심 소송의 또 다른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