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잡스없는 애플 "삼성스럽다?"

기자수첩입력 :2012/03/09 11:44    수정: 2012/03/09 13:31

남혜현 기자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애플의 독특한 원칙과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존중한다

팀 쿡이 애플 CEO직을 수락하던 지난해 8월 26일, 그가 직접 직원들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은 지켜졌다. 팀 쿡이 선장이 된 애플은 지난 7개월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변했다. 새 애플의 혁신이 기대에 못 미친 까닭이다.

8일 애플이 새 아이패드를 공개 행사를 열었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예전보다 미지근했다. 애플은 새 아이패드 발표 전반에 개선된 '사양'을 앞세웠다. 화질이 좋아졌다 배터리 수명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분명 반가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플스럽지 않다는 여운도 남겼다.

애플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아이폰4S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듀얼코어인 A5칩, 개선된 카메라 촬영 속도와 배터리 성능 등 팀 쿡의 첫 작품은 아이폰4의 하드웨어 사양 일부를 개선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더 좋아진 사양을 전면에 내세오는 것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전자제품 업체에서 늘상 해오던 이야기다. 특히 IT 기기들은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성능을 매번 개선하는 것을 숙제로 삼아왔다.

애플이,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것은 이같은 IT 기기가 가진 패러다임을 뒤엎어서다. 대중이 보기에 잡스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확실한 디자인 정체성, 그리고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프트웨어의 편리함은 애플의 주무기였다.

새 아이패드가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쿼드코어 그래픽을 탑재하는 대신 두께가 다소 두툼해진 것을 두고, 잡스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양을 포기하면 몰라도 디자인을 포기한다는 것은 애플답지 않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업계에선 팀 쿡 체제의 애플이 잡스보단 오히려 경쟁사인 삼성을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완성해 놓은 제품군을 유지하되, 내부 사양을 개선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삼성과 사양 경쟁을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잡스 타계 이후 제품 개발에 큰 틀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며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에 집중한다기보다 성능 개선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니 아이패드, 보급형 아이폰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것도 애플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지난해 199달러에 출시된 아마존 킨들파이어를 애플이 미니 아이패드로 막아서야 한다는 보고서들은 애플이 이제 프리미엄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간 고사양만 경쟁력으로 앞세우던 삼성이 이와는 반대되는 전략을 최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신종균 삼성 MC사업부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현장에서 감성을 강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강조했다. 사양으로 몸을 만들었으니, 이제 소프트웨어로 머리를 만들어 경쟁하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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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의 최대 경쟁자들이 서로의 전략을 바꿔서 적용하는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적잖은 흥미를 자아낸다.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애플이 다음 번에는 정말 애플답게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팀 쿡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혁신 보단 안정을 읽는다. 안정은 편안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낳지는 못한다. '새 아이패드'가 나온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새로워질 애플 제품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