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올해도 국회에 오른다. 11년째 표류 중인 보험업계의 숙원 사업이지만, 여전히 의료계의 반대에 직면해 있어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거나 이를 전문 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소비자가 병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에 의료비 증명서류를 자동으로 보험사에 전송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근거도 포함됐다.
이는 실손보험이 보편화됨에 따라 보험금 청구가 빈번해졌으나, 소비자 상당수가 번거로운 절차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현재 소비자는 실손 보험금 수령까지 비교적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병원·약국에서 증빙자료를 받아 보험설계사 또는 팩스로 제출하거나, 직접 보험사를 찾아 청구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일부 보험사가 대형 병원과 손잡고 자체 앱으로 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했으나, 모든 병원과 제휴를 맺은 게 아니어서 그 효과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국회를 넘어서면 병원과 보험사가 전산망으로 연결되는 만큼 소비자는 서류 증빙 과정 없이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된다. 서류 발급과 심사로 최소 5단계를 거쳐야 했던 의료비 청구 절차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전재수 의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후 11년째 공회전을 반복하는 사안"이라며 "그 사이 가입자 3천800만명의 불편이 가중됐고, 보험금 청구라는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는 가입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업계는 전재수 의원의 법안 발의에 환영하고 있다. 보험금 청구 과정을 간소화함으로써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데이터를 쌓아 장기적으로는 보험료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업계가 기대하는 부분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간 8천만건에 이르는 청구 건을 일일이 수기로 입력하다보니 어려움이 크다"면서 "간소화로 보험금 청구가 증가하면 손해율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소액이라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보험사가 환자의 질병 정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이란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의무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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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성명서를 통해 "보험사 주장처럼 국민의 편의를 증대시키려는 게 아니라 실손보험 청구대행 강제화로 환자의 진료정보를 수집하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실손보험 가입거부 차단 등 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는 데 쓰일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정치권이 어느 쪽의 목소리를 수용하느냐가 관건이다.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압도적인 의석(176석)을 차지한 여당이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보험금 청구 절차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도 만만찮아 이번엔 법안이 통과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