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는 동물 세계와 달리 ‘가치(價値)’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여기서 가치는 물건의 값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 용어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각각의 존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뜻과 의미를 말한다. 인간은 그 가치를 지향하며 산다. 하지만 그 가치는 항상 긍정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비인간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그중 가장 극악한 형태다. 인간이 욕망의 화신으로서 동물의 한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고, 가치가 그 욕망을 극대화하는 방편으로 오용되는 한, 인간은 크고 작은 제노사이드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을 가치보다 상위 개념으로 놓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지구상의 개별적인 모든 생명체가 가치보다 더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또 다른 형태의 제노사이드다. 전염병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인류를 대학살한다. 하지만 배경은 다르다. 과거의 대학살은 주로 인간의 무지(無知) 때문이었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방법까지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걸 모르기에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술(呪術)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처방이 치료가 아니라 형벌이었다.
과학이 우주까지 해부하는 요즘에는 무지 탓보다 오만(傲慢) 탓이 크다. 백 가운데 고작 열을 알았을 뿐인 인간이 전부를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 사실은 모르고 있는 아흔 개의 구멍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구멍이 바이러스의 서식지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발전한 나라에서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하게 활동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게 그 탓이다.
인간의 오만은 단지 지식수준에서만 발동하는 게 아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오만은 가치를 둘러싼 패거리 싸움에서 작동한다. 인간은 분명 동물이다. 동물은 다윈의 분석처럼 진화한다. 진화의 핵심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다. 문제는 인간사회의 경우 이 자연이치가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적자생존은 생태계에 필요하지만 인간의 그것은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코로나19 대응방식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오만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케이스다. 첫 번째 오만은 코로나19가 ‘미개한 동양’에서만 나타날 전염병이라 생각한 것이다. 지식의 오만이다. 두 번째 오만은 그것이 범람한 후에도 동물적 적자생존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야 죽건 말건 우리 국민만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류 전체를 방치한 거다.
일본은 그중 최악이다. 코로나19가 그 어떤 인종이나 민족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의 대부분이 알아챘을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는 척했다. ‘조용한 전파’를 넘어 자국 국민마저 위태로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올림픽이라는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무고한 생명을 죽음의 나락으로 이끌려 했고 또 이끌었다. 절대 무지 때문이 아닌 이 오만은 2차 세계대전에 못지않은 전쟁범죄일 수 있다.
415 총선 결과가 ‘우리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 우리가 훨씬 더 지혜롭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방 투명 민주의 3원칙 아래 일관되게 코로나19와 맞섰고 우리 의료진과 국민은 이 지침에 일심동체가 되어 행동했다. 내 목숨과 내 이웃의 생명이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모두가 온몸으로 느끼고 행동했다.
우리 각자가 지난 3~4개월 행동한 작은 몸부림 하나하나는 인류 역사 이래 지금껏 보여줬던 모든 평화주의를 합친 것보다 큰 메아리로 세계 곳곳에 울려 퍼졌다. 415 총선에서 우리 국민이 여당에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것은 우리가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평화 민족이라는 사실을 같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사회가 나아간다면 과거보다 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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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결속하기까지는 참으로 고되었던 과거의 항쟁이 피가 되고 살이 됐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노동을 아끼지 않았던 모든 산업 현장과 불의와 부패와 부정과 폭력에 맞서 싸웠던 모든 민주화 투쟁의 현장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각자의 몸에 녹아들어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의 집단 트라우마는 크다. 여린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 뼈아프게 새겼던 것이다.
제노사이드와의 투쟁은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인간인 한 그 괴물은 달콤한 악마처럼 우리를 다시 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크고 작은 항쟁을 겪으면서 우리 각자의 생명과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사회적 연대를 통해 그 공감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확인했다. 작은 승리가 쌓여왔고,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의 위대함을 크게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