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가 2016년 인수한 세계 최대 반도체·명령어셋 설계 전문 기업인 ARM이 재매각을 위한 협의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 6월부터 ARM 차이나 앨런 우 대표의 해임을 두고 회사 이사회와 내부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사회는 앨런 우 대표가 중국 현지 기업을 지원하는 펀드를 별도 조성한 데 대해 ARM 차이나와 '이해 상충'으로 판단하고 해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앨런 우는 이사회 결정에 불복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중국 정부의 개입과 중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ARM 차이나 내홍이 현재 진행 중인 매각과 관련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 2018년 중국계 펀드에 지분 51% 매각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ARM 차이나의 지배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 인수 당시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썼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주식과 자산을 꾸준히 내다 팔았다. 2018년에는 ARM 중국 사업 지분 중 51%를 허우안혁신펀드(厚安創新基金)에 7억 7천520만 달러(약 8천306억원)에 팔았다.
허우안혁신펀드는 ARM과 호푸투자관리공사(厚樸投資)가 공동 관리하는 합자회사(조인트벤처)다. 투자자로는 중국투자공사(CIC), 실크로드 펀드(중국정부), 선전선예그룹, 테마섹(싱가포르)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ARM 차이나는 더 이상 ARM의 중국 지사가 아니다. ARM 아키텍처의 중국 내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고 'ARM'이라는 상호를 쓰고 있지만 ARM의 지배력이 온전히 미치지 못한다.
■ ARM 차이나 이사회, 앨런 우 해임
ARM 차이나와 영국 ARM 본사의 갈등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됐다.
영국 ARM 본사가 ARM 차이나 앨런 우(Allen Wu) 대표를 해임한 것이 그 발단이다. 앨런 우는 2004년 ARM에 입사해 2007년부터 중국 시장을 담당한 인물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앨런 우 대표는 ARM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인 '알파텍처'(Alphatecture)를 만들었다. 또 중국 내 고객사들이 이 펀드에 투자하면 라이선스 비용을 할인해 주는 정책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ARM 차이나는 이미 같은 목적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ARM 차이나 대표의 지위를 이용해 별도로 조성한 펀드로 투자를 시행하고 라이선스 비용까지 할인해 주는 정책에 대해, ARM은 '이해 상충'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ARM 차이나 이사회는 6월 초 앨런 우 대표를 해임했다. 이사회는 영국 ARM(지분 49%)측 인사 4명과 허우안혁신펀드(지분 51%)측 이사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 앨런 우, ARM측 인사 접근 원천봉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수 년간 앨런 우의 리더십에 ARM은 물론 중국 측(허우안혁신펀드)도 불신을 품고 있었고 결국 그를 해임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앨런 우는 이사회의 해임 결정에 반발하는 한편 중국 상법상의 지위를 이용해 여전히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앨런 우 대표의 저항은 7월 들어 한층 거세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앨런 우 대표는 사설 경비원을 고용해 영국 ARM과 ARM 차이나 이사진·임원이 ARM 차이나 시설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 ARM 차이나 "중국 정부 개입해 달라"
ARM 차이나는 지난 28일 직원 200여 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에서 "ARM이 ARM 차이나 고객사들에게 기존 거래나 계약을 종료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ARM 차이나는 중국 측이 운영하는 회사인만큼 중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RM 차이나는 또 이 공개서한에서 "중국 정부가 ARM 차이나를 둘러싼 갈등에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 자산을 지킬 수 있도록 개입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ARM은 즉각 "앨런 우는 잘못된 정보로 ARM 차이나 임직원들을 혼란케 함은 물론 중국 내 고객사들과 소통을 막아 중국 반도체 혁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 ARM 차이나 갈등 장본인, 소프트뱅크는 '뒷짐'
ARM 차이나에 따르면 지난 해 ARM 반도체 IP(지적재산권) 전체 매출에서 ARM 차이나가 차지하는 비율은 27%에 이른다. 앨런 우 대표가 ARM 차이나 지지를 등에 업고 독자 행보를 펼치기에도 충분한 수준이며 이 경우 ARM 매각 논의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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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ARM 차이나의 요청대로 중국 정부가 중재에 나서도 문제다. 앨런 우 대표의 해임을 두고 이사회와 직원이 벌이던 국지적인 갈등이 영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충돌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ARM 차이나를 둘러싼 마찰은 ARM 재매각의 뜨거운 감자로 떠 오르는 것은 물론 ARM 재매각 이후에도 인수 당사자에게는 골칫거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낳은 장본인인 소프트뱅크는 정작 갈등 해결에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