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는 5월20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3년’을 12개 분야로 나눠 평가하는 시리즈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업계와 학계의 전문가 41명으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소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 시리즈 기사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더 알차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④블록체인 정책, C학점...토큰 경제 담론 제자리 걸음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산업이 긴 침체기를 지나고 있지만, 이 산업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25억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스북이 자체 디지털화폐 '리브라'를 발표하고,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검토하면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경제' 시대를 떠받칠 근간 기술이라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는 화폐를 시작으로 주식, 부동산, 콘텐츠, 정보 등의 자산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이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으로 전환되고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유통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로 요약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 3년 성적' 이렇게 매겼습니다]
우리 정부도 디지털 경제 시대를 대비할 국가 차원의 블록체인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지만, 정부의 블록체인 정책은 여전히 암호화폐 광풍이 불었던 2017년에 머물러 있다. 블록체인은 혁신 기술로 육성하고, 투기와 사기 위험이 있는 암호화폐는 규제한다는 입장이다.
암호화폐를 규제 프레임 안에 가둬 놓으니, 디지털 경제의 핵심 요소인 토큰을 제대로 다룰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가다가 페이스북 같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한 글로벌 IT기업이나, 발빠르게 CBDC를 발행한 중국 등에 디지털 경제 주권을 뺏길 위험도 존재한다.
전문가들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 3년의 블록체인 정책에 대해 "정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고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 자체가 부족해 보인다"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래도 블록체인 기술 개발 지원과 활용기반 조성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고, 부산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줬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는 C학점 수준에 해당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리브라·디지털위안화 발행 예고...디지털 경제 꿈틀
글로벌 초국가기업인 페이스북이 지난해 6월 자체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공개했다. 은행 계좌 없이 살아가는 17억명 이상 인구가 리브라로 손쉽게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페이스북 리브라가 제시한 비전이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최근 백서2.0 버전을 발표하며 리브라 코인뿐 아니라 주요국 법정화폐와 1대 1로 가치가 교환되는 스테이블 코인들을 추가로 발행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업데이트했다. 그래도 당초 제시한 비전은 그대로 유지했다. 국경에 상관 없이 쓸 수 있는 글로벌 화폐들을 만들고 쉽고 빠르고 간편한 결제 및 송금 서비스까지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리브라 계획을 공개한 직후 전세계 금융 당국과 중앙은행은 발칵 뒤집어졌다. 페이스북 같은 초국가 기업이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 민간 화폐를 발행했을 때 각국의 통화 주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것이다.
페이스북 리브라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도 직접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이 적극적이다.
중국은 주요통화국 중 가장 빠르게 실제 CBDC를 발행할 국가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일부 직역에서 디지털위안화 사용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 매체들은 슝안지구 내 12개 업체를 선정해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며,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테스트 매장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암호화폐 열풍이 불던 2017년부터 인민은행에 디지털화폐 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특허를 80개 이상 출원하는 등 다른 국가들보다 발빠르게 변화에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이과 중국이 디지털화폐 발행에 열중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국경에 상관 없이 유통될 수 있는 디지털화폐를 통해 초국가적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고 그 통제권을 쥐겠다는 속내다.
페이스북은 올해 말에 리브라를 출시하고,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세계인에 공개할 예정이다.
■블록체인-암호화폐 분리 정책 여전...우물쭈물하다 위기 맞을 수도
디지털 경제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나라의 블록체인 정책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암호화폐 열풍이 꺾인 후 범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산업 이슈를 다루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지난해 5월 비트코인 가격이 1천만원을 넘자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법무부, 금융위원회가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한 것이 가장 최근이다.
당시 회의에서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국내외 규제환경 변화 등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정부는 시장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시장에 주의 메시지를 보냈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여전히 투기나 사기와 관련된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디지털화폐 연구반을 신설했지만, 그 결과물을 크게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한은은 연내 기술검토를 마치고 내년 파일롯 시스템을 구축해 테스트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CBDC 연구가 다른 국가와 보조 맞추기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한은 측은 "가까운 시일 내에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면서 “대내외 여건이 크게 변할 경우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어 연구에 착수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블록체인 정책평가 자문단으로 참여한 인호 고려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고대 블록체인연구소장)는 "아날로그 머니가 디지털 머니로 전환될 때 IT강국인 우리나라가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암호화폐를 너무 규제하고 있으니까 기회를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통화 주권을 지키려면 이제부터 정신차리고 디지털 자산 혁명을 위한 전향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지금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데이터를 다 독식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돈 그리고 부동산, 주식 소유권 증서에 대한 관리 기능이 다 넘어가고 수수료 명목으로 세금을 내면서 살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금법서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 첫 법제화...기대와 우려 공존
암호화폐 사업자에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는 ‘특정금융 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암호화폐 관련 첫 법제화가 이뤄졌다.
특금법은 국제적인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 기준에 국내 법률을 맞추기 위해 이뤄졌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18년 10월과 지난해 6월에 걸쳐 발표한 권고안 및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원국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제 또는 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부가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에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특금법을 추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책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하지만, 그동안 규제 공백 상태에 놓여 있던 암호화폐 산업이 처음으로 법제화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있을 변화는 주목할만 하다.
업계는 암호화폐가 산업으로 인정 받았다는 점과 건전한 시장 질서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향후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거래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아 한빗코 대표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거래소의 법적인 지위가 확보됐다"고 특금법 통과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특금법 통과는 거래소의 신고허가제를 골자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암호자산을 다루는 크립토금융 산업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거래소의 투명한 운영으로 이어져 신규자본 유입과 함께 블록체인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특금법이 오히려 블록체인 분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금법에 암호화폐 사업자에 대한 신고허가제가 포함되면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사업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은행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확보하고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ISMS)을 획득할 것이 필수 요건으로 제시됐는데, 모두 스타트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조건이다.
블록체인 정책평가 자문단으로 참여한 이정엽 한국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의정부지검 부장판사)는 특금법 통과에 대해 "제도권에 첫 발은 들인 것은 좋지만 특금법으로 새로운 스타트업이 오히려 활발히 나오지 못하게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전세계적으로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무수히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나갈 텐데 우리나라만 위험성을 다 제거한 실험실 환경을 만들어 놓고 몇 곳만 사업할 수 있게 한다면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블록체인 지원 사업·규제자유특구 사업은 성과 인정해야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 개발 지원과 활용기반 조성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면서, 예산 규모도 늘리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또 부산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줬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블록체인 예산은 2018년 150억에서 지난해 350억으로 올해 400억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과기부는 특히 블록체인 기업을 위한 초기 시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다양한 블록체인 공공 적용 및 대국민 대상 서비스 개발 과제를 발굴하는 데 힘쓰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1차로 특구 사업으로 뽑힌 ▲블록체인 기반 부산 스마트 투어 플랫폼 서비스(현대페이, 한국투어패스) ▲블록체인 기반 공공안전 영상 제보 서비스(코인플러그) ▲디지털 원장 기반 지역경제 활성화 서비스(부산은행) ▲해양물류 플랫폼 서비스(비피앤솔루션·부산테크노파크)는 개발을 마치고 실증사업을 준비 중이다.
정부 기조에 맞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 암호화폐 관련 사업이 포함되진 않았다. 대신 원화와 1대 1 고정비율로 교환되는 스테이블코인 형태의 디지털 바우처를 발행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에서 사용자에게 보상형태로 지급할 수 있게 했다. 디지털 바우처를 통해 일종의 토큰이코노미를 실험해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암호화폐를 금기시했던 과거에 비해 진전됐다고 평가할만 하다.
블록체인 정책평가 자문단으로 참여한 김화준 코인플러그 고문(4차산업혁명위원회 3기위원)은 "2017년말부터 2018년까지 정부가 암호화폐는 전체적으로 안된다는 개념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지난해 시작된 규제자유특구가 시작되면서 약간의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블록체인 기업들이 새롭게 시도해 볼만한 부분에 대해서 통로를 뚫어줬다는 점은 좋게 평가받을 만 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정책은 C학점...전문가들 "디지털 경제 근간 기술로 블록체인 바라봐야"
블록체인 정책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 자문단은 블록체인 예산 증가나 부산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선정 등 문재인 정부 2년 보다 개선된 부분을 감안해도,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에 갖는 관심 자체가 너무 저조하고 여전히 암호화폐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낮은 평가를 내렸다. 인호 교수는 C- 학점, 이정엽 회장과 김화준 고문은 C학점을 매겼다.
규제 일변도였던 작년 평가에서는 평균 D학점이었다.
인호 교수는 "정부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결국 미래 금융 산업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진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 교수는 " 제조업은 중국에 쫓기고 있고 경쟁력 자체가 부족한 영역이 많다.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 인력들을 결국 서비스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금융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영역이다. 미래 금융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금융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IT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주축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엽 회장은 "블록체인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게 만드는 네트워크 본다면 정부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감염자들의 개인 정보를 추적했는데, 원래는 영장이 필요한 일이다. 지금은 긴급상황이라 넘어갔지만 나중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논란 없이 정보가 공유되게 하려면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여행정보나 체온정보를 올리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내 정보를 누군가 자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신뢰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블록체인으로 코로나19 감염자 데이터 허브를 개발한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블록체인을 단순 산업으로만 바라보면 기존 산업에 비해 가치도 적은 것 같고 의미도 없어 보일 수 있다"며 "이런 철학적인 이해를 가지고 관심을 높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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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준 고문은 "블록체인을 넘어 신산업 전체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고문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정부가 주도해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이뤘지만 이제는 민간이 자본 규모나 인적자원 측면에서 정부를 넘어선 상황이다. 따라서 민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풀어주고 규제는 규모가 커졌을 때 어떤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민간단체나 학계 전문가들이 규제가 필요한 영역에 대해 경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보안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신산업에 대한 규제 시스템 자체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