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업계, 규제혁파 아닌 '규제불똥'에 당혹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 입법 취지에 어긋나”

인터넷입력 :2019/05/09 14:34    수정: 2019/05/09 14:34

방송통신위원회가 ‘전기통신역무 중단 시 손해배상 규정’을 신설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음 달 25일 시행키로 해 인터넷 및 스타트업 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던 문재인 정부 기조에 역행하는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인터넷 업계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와 같은 기간통신사업자에게 한정돼야 할 규제와 책임의 의무가 네이버·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까지 과도하게 부과된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 6월 시행…인터넷 기업도 적용

방통위는 지난 2월 전기통신역무 중단 시 손해배상 규정 신설 등 전기통신사업법 2건이 개정됨에 따라 법률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자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및 하위 고시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에 전기통신역무 제공 중단 시 ▲기간통신사업자 ▲집적정보통신시설사업자 ▲전년도 매출액 1조원 이상 또는 전기통신서비스 전년도 매출액 100억원 이상 또는 3개월 간 일평균 이용자수 100만명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는 ▲역무제공 중단 사실 및 원인 ▲사업자의 대응조치 현황 ▲이용자가 상담 등을 접수할 수 있는 부서 연락처 등을 지체없이 이용자에게 알려야 한다.

또 손해배상 기준시간 이상 역무 중지, 장애 발생 등으로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해당 이용자에게 ▲손해배상의 청구권자 ▲손해배상액의 산정기준 ▲손해배상 절차 및 방법 등을 개별 통지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은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번 시행령이 다음 달 본격 시행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인터넷 기업들은 서비스 장애 발생 시 해당 사실을 전자우편, 문자메시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용자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 또 사업자의 대응조치 현황과 상담 가능한 부서 연락처 등을 안내해야 한다. 아울러 이용약관 등을 기준으로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해당 이용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된 기준과 절차 등을 개별 통지해야 한다.

■ 인터넷 업계 “시행령, 입법 취지와 맞지 않아…적용 범위 지나쳐”

인터넷업계는 먼저 이번 시행령이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시행령의 상위법에는 이동통신사업자에게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됐는데, 시행령에서 그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행령의 상위법인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2018년 4월 신경민 의원 대표발의)의 발의 배경에는 “통신장애가 발생한 사실과 손해배상에 관한 사항을 이용자에게 알리는 절차가 미흡하니, 법률에 통신장애가 발생한 경우 이동통신사업자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함을 명확히 규정해 이용자를 두텁게 보호하자”고 나와있다.

해당 법안은 2018년 4월 초 SK텔레콤 통신장애가 발생한 직후 발의됐다. 그리고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후 논의가 지지부진 하다, 같은 해 11월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수차례 서비스 장애 사고로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끼친 이동통신사들을 겨냥한 법안이란 뜻이다.

문제는 방통위가 마련한 시행령 개정안에 ‘전년도 매출액 1조원 이상 또는 전기통신서비스 전년도 매출액 100억원 이상 또는 3개월 간 일평균 이용자수 100만명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가 포함되면서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배달의민족 같은 대중적인 인터넷 서비스도 해당 규제를 받게 된다. 통신장애 불똥이 인터넷 기업에까지 튀었다고 보는 이유다.

2018년 11월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위치한 KT 아현지사에서 화재가 발생,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진화 작전을 펼치고 있다.[출처=뉴스1]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방통위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은 상위법 개정과 시행령 개정의 취지가 서로 부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부가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업자의 기준을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개혁이라는 국정운영 방향에 역행하는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규제확대의 문제가 있다”며 “입법취지에 맞게 적용대상을 기간통신사업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기업 한 관계자는 “개정안은 이용자 수 100만 명 미만의 부가통신사업자가 무료서비스를 할 경우는 제외토록 했는데, 가령 배달서비스의 경우 앱 실행까지는 무료인데 음식을 주문했을 때는 결제가 이뤄지므로 무료서비스인지 유료서비스인지 해석이 애매하다”면서 “실제 장애 발생 원인이 다양함에도 원인 파악이 되기도 전에 이용자에게 장애발생을 통지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규제”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방통위의 개정안은 언론매체를 통한 고지와 홈페이지 게시를 병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라며 “언론고지를 한 내용에 더해 장애사실을 게시하도록 하는 것은 사업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로 불편을 겪은 이용자가 아닌, 일반 이용자에게까지 장애 사실을 알리면 사업자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이용자까지 보상하도록 하는 조항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 방통위 “각계 의견 듣고 최종 의결…지키기 어려운 규제 아냐”

방송통신위원회 로고.

이 같은 인터넷 업계 우려에 방통위는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합리적 의견을 듣고 최종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또 인터넷 업계의 우려에는 일부 공감하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이용자보호과 담당자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서비스 장애 발생이 일정 시간 지속될 경우 이를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알리라는 게 핵심”이라며 “장애 원인 파악이 아직 안 된 상태일 경우는 ‘장애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알리면 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사업자들은 자율적으로 잘 하고 있지만, 일부 해외 사업자의 경우는 본사에서 파악 중이라고 하는 등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제도화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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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법 적용 대상에서 부가통신사업자를 제외할 수 없냐는 질문에는 “발의된 법안이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과됐지만 전체 전기통신사업자 대상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기간통신사업자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아직 최종 의결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계와 여론,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각계 의견을 들어보고 6월 시행 이전에 위원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비스 장애 고지 방법도 다양한 수단으로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규제는 아니다”며 “손해배상도 별도 약관을 기준으로, 또 이용자가 특별한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만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으로 사업자들이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