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 반대 권고…삼성물산 합병 '안갯속'

삼성물산-엘리엇 '장군멍군'...국민연금 판단이 운명 가를 듯

홈&모바일입력 :2015/07/03 22:04    수정: 2015/07/04 08:57

정현정 기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에 반대 권고 의견을 내면서 삼성그룹이 추진하는 합병 작업이 큰 암초를 만났다.

기관투자자들의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ISS가 합병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서 당장 2주 앞으로 다가온 합병 결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결정과 함께 소액투자자 결집도 더욱 중요해졌다. 또 법원이 결정을 앞둔 KCC 매각 자사주의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도 큰 변수로 떠오르게 됐다.

3일 ISS는 이날 주요 투자자들에게 "삼성물산 주주들은 오는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의사를 낼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의 의결권 자문 보고서를 발송했다.

ISS가 합병에 반대 이유로 내세운 것은 주로 합병 비율이다. 현재 1 대 0.35로 정해진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현저하게 불리하다는 게 요지다. ISS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 "합병을 통한 매출 목표가 지나치게 긍정적이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잠재적 합병 시너지 효과도 삼성물산 주식에 대한 저평가를 보완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그동안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문제삼아 합병에 반대해왔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명분에 그대로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됐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비율 0.35 대 1이 삼성물산 주주들에 불리하게 결정됐다며 삼성물산의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한 결과라고 주장해 왔다. ISS 역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0.95대 1은 돼야한다며 현재의 합병비율이 지나치게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책정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ISS, 반대 권고 엘리엇 손 들어줘...국민연금 판단이 합병 운명 가를 듯

이날 권고안이 나온 직후 엘리엇은 "합병안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명확하게 입증한 ISS의 권고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ISS 보고서를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ISS 권고안에 따라 외국인 주주들이 반대 의견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2위 의결권 자문업체인 미국 글래스 루이스도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고 한국의 서스틴베스트도 반대 의견을 낸 만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주총 참석률을 70%로 가정하면 삼성물산 주주 약 47%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삼성그룹의 우호지분은 KCC를 포함해도 19.95%다. 반면 출석 의결권의 3분의 1, 약 23%의 반대표가 나오면 합병은 무산된다. 삼성물산 주주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엘리엇 7.12%를 포함해 주주명부가 33.61%다.

현재로써는 지분 10.15%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밖에 없는 구도다. 국민연금이 반대할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KCC에 매각한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주(5.76%)의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도 주요 변수 중 하나다. 앞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자사주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주총 예정일인 17일 이전까지 이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상황이다. 만약 재판부가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면 5.76%의 우호지분이 날아가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ISS 반대 권고가 예상된 수순이었던 만큼 삼성물산이 적극적인 찬성표 결집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ISS가 이번 합병에 부정적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해왔다. 해외에서는 주가가 아닌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유사 분쟁 케이스에서도 ISS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준 바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이번 ISS 결정에 대해 "ISS의 보고서가 경영환경이나 합병의 당위성과 기대효과, 그리고 해외 헤지펀드의 근본적인 의도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합병이 기업과 주주에게 모두 이로우며 궁극적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것임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합병을 원활하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삼성물산은 최근 소액주주들에게 합병 법인의 청사진을 설명하는 자료와 함께 의결권 위임 서류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있다. 또 지난달 30일 제일모직 윤주화 사장과 김봉영 사장, 삼성물산 김신 상사부문 사장 등 양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30% 수준의 배당성향 제고와 거버넌스 위원회 신설 등 적극적인 주주친화 정책도 약속했다.

관련기사

이와 함께 합병 관련 별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주들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이미 최치훈 건설부문 사장과 김신 상사부문 사장이 싱가포르와 홍콩 등을 돌며 해외 주주들과 접촉해 합병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일단 삼성물산은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으로부터 합병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기업결합 신고서를 승인했다. 또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은 엘리엇이 제기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