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승기…합병 성사 남은 과제는?

KCC 매각 자사주 의결권 & 국민연금 향배

홈&모바일입력 :2015/07/01 16:06    수정: 2015/07/02 10:33

정현정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서 삼성 측이 승리를 거두면서 합병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삼성 측이 엘리엇이 공격의 핵심 사안으로 삼은 합병비율과 합병목적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법원 판단을 받아내면서 오는 17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하지만 엘리엇이 추가로 제기한 자사주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이달 중순에나 나올 예정이어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수석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 결의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제기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물산 서초사옥 [지디넷코리아]

■법원 결정 의미는? 합병 정당성 확보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서는 주총 개최와 합병 의결을 금지해달라는 엘리엇의 요구가 법리적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만큼 기각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왔다. 특히 그동안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하는 핵심 명분이었던 합병비율의 불공정성과 합병 목적의 부당함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만큼 합병 결의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

합병비율이 부당하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산정 기준이 된 삼성물산 제일모직 주가가 자본시장법 상 부정거래행위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어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 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합병 결정 시점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정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사의 가치는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고 주가 역시 본래 시시각각 변동하고 이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정 시점이 회사에 유리했을 것이란 사정만으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철저하게 오너 일가의 승계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합병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엘리엇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합병 공시 직후 삼성물산 주가가 상당히 상승하는 등 시장에서 합병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점에 비춰보면 이번 합병이 삼성물산에게는 손해만 주고, 제일모직에는 이익만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삼성물산 경영진이 삼성물산 및 그 주주의 이익과 관계없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 즉 제일모직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이 사건 합병을 추진한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했다.

법원 결정 이후 삼성물산은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며 합병이 정당하고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합병이 기업과 주주에게 모두 이로우며 모든 과정이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원활하게 합병을 마무리 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KCC 매각 자사주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에 촉각

다만 이날 법원은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해야한다는 엘리엇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주총이 예정된 이달 중순까지로 유보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 899만주(5.76%)의 의결권을 행사 가능 여부에 삼성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삼성물산의 우호지분은 이건희 회장(1.37%)을 비롯해 삼성 계열사와 KCC를 합쳐 19.55% 수준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10.15%를 비롯해 국내 기관이 2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 지분을 모두 합쳐도 합병 결의를 위한 최소한의 찬성표로 예상되는 47%에는 못 미친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KCC에 매각한 자사주 의결권 행사를 막아달라는 엘리엇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이 중 5.76%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돼 삼성 입장에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KCC 자사주의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는 국민연금의 찬반 여부와 함께 판세를 가를 주된 변수로 꼽히고 있다.

엘리엇 역시 이날 법원 결정 직후 “법원은 삼성물산이 합병안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의 일환으로 자사주를 KCC에게 부적절한 방식으로 매각한 것이 불법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그러한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었다고 믿고 있다”고 재판부의 남은 결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소액 주주들의 결집도 만만치 않다. 현재 KCC 자사주 의결 금지 가처분 신청에 제출된 소액주주들의 탄원서만 130건에 이른다. 탄원서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자사주 매각에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음으로 KCC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돼야한다"는 의견이 주로 담겼다. 탄원서 제출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카페 회원은 2천600여명으로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0.5% 가량으로 추정된다.

■삼성물산 vs. 엘리엇 표(票) 확보 총력

이에 따라 삼성물산과 엘리엇은 임시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위임장 확보전에 전력하고 있다. 합병안을 통과시키려면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2/3 이상, 전체 의결권의 1/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주주 참석율을 약 70%로 가정하면 최소 47%의 찬성표를 얻어야 승산이 있다. 반대로 엘리엇은 23% 이상의 합병 반대 지분을 규합하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무산시킬 수 있다.

주주명부가 폐쇄된 11일을 기준으로 외국인 지분율은 33.61%다. 이 중 엘리엇이 7.12%를 보유하고 있고 주주명부 폐쇄 전 삼성물산 지분 2.2%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된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 등도 엘리엇의 편에 설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국내 투자자 가운데 삼성물산 지분 2.11%를 보유한 일성신약은 합병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 30일 긴급 기업설명회(IR)를 열고 합병 이후 배당성향 30% 수준 상향과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위원회 신설 등 주주친화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 국민연금 등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이 최근 삼성그룹에 통합 삼성물산의 주주 친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응하면서 일반 주주들에게 합병의 청사진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또 찬성 위임장 확보를 위한 홈페이지 '뉴(NEW) 삼성물산'을 새로 개설하고 소액 주주와의 소통과 합병 당위성 전파에 나섰다. 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고, 이에 따라 주식의 가치도 더욱 증대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간 배포한 관련 보도자료와 의결권 위임을 위한 상세한 방법 안내, 관련 질문응답(FAQ) 사항, 합병 관련 뉴스 등도 모아서 소개하고 있다.

엘리엇 역시 위임장 확보를 위해 지난달 삼성물산으로부터 주주명부를 넘겨받아 열람한 후 사본을 작성해 반출했다. 또 앞서 개설한 홈페이지를 통해 추가적인 입장을 업데이트 하는 등 여론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치밀한 엘리엇 다음 행보는?

이번 법원의 기각판결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많은데다 엘리엇 역시 앞선 심문기일에서 법리적 설득 보다는 여론전에 보다 중점을 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엘리엇의 다음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다만 가처분 소송에서 패하고 주총에서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엘리엇은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합병무효를 주장하는 본안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상법 제236조는 합병 등기가 있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엘리엇은 "불공정한 합병비율은 향후 합병 무효 소송의 원인이 되고 소가 제기되면 합병 무효로 귀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향후 본안 소송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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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익 극대화라는 경영 참여 목적을 고려할 때 차익 실현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인 주주 제안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이미 삼성물산 측에 현물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발송해 주총 안건으로 등재시켰다. 현물배당은 주식 등 기업이 보유한 실물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배당 방식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주요 계열사 주식이 주요 목표로 분석된다.

이날 법원 결정 이후 엘리엇은 “법원의 결정에 실망했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앞으로도 합병안이 성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모든 삼성물산 주주분들께서도 동일한 선택을 하실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