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XR 디지털 기술로 잇는 문명의 시간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백제 왕릉까지

전문가 칼럼입력 :2026/10/28 09:31

김기홍 디지털헤리티지 공학박사·큐리오커넥트 대표

올해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15일간 이집트를 탐험을 했다. 아스완의 아부심벨 신전과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을 거쳐 기자의 피라미드와 대이집트박물관까지, 고대 이집트 문명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는 여정이었다. 디지털 헤리티지를 연구하는 필자에게 이번 여행은 단순한 유적 탐방을 넘어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서 방문한 세티 1세(Seti I)의 무덤과 투탕카멘(Tutankhamun)의 무덤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무덤은 모두 약 3300년 전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조성된 왕릉이다. 그중 제19왕조 파라오 세티 1세의 무덤은 기원전 13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왕가의 계곡에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벽화로 유명하다. 긴 통로와 여러 공간에는 신들의 모습과 사후 세계로 향하는 파라오의 여정이 섬세한 색채와 상형문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색채와 그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반면 투탕카멘의 무덤은 세티 1세보다 약 40~50년 앞선 기원전 1323년 무렵 조성됐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 의미는 특별하다. 1922년 하워드 카터가 발견한 이 무덤은 풍부한 부장품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매장실 벽화에는 파라오의 장례 의식과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두 무덤은 규모와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관과 내세관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 파라오 세티 1세 무덤의 내부 벽화.
약 3,350년 전 조성된 투탕카멘 무덤의 매장실 벽화.

두 무덤을 살펴보며 필자의 머릿속에는 과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IDHLab의 박사과정 중 참여했던 충남 부여 백제왕릉원의 동하총(東下塚)이 떠올랐다. 동하총에는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도가 그려져 있으며, 천장에는 연꽃과 구름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이집트 왕릉과 백제 고분은 약 2000년의 시대적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조성됐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염원을 벽화로 남겼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유산을 오늘날 온전히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벽화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훼손될 수 있고, 보존을 위해 관람이 제한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디지털 헤리티지 기술이다. 3차원 스캐닝과 사진측량 기술을 활용하면 문화유산의 형상과 공간을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으며,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디지털 공간에 재구성할 수 있다.

부여 백제 동화총 디지털헤리티지 콘텐츠.
부여 백제 동화총 디지털헤리티지 기술 프로세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 연구의 가능성은 더욱 확장된다. AI 기반 영상 분석 기술은 벽화의 색채와 문양을 분석하고 훼손 영역을 식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발굴 보고서와 역사 문헌 등 방대한 자료를 연결해 문화유산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AI가 추정한 복원 결과는 역사적 사실과 구분해야 하며, 반드시 학술적 근거와 전문가의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확장현실(XR) 기술은 이렇게 기록하고 복원한 문화유산을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도록 돕는다. 실제 유적과 디지털 복원 공간을 연결하면 접근이 제한된 왕릉 내부도 가상으로 탐색할 수 있다. 필자가 참여했던 백제왕릉원 관련 연구개발에서도 중요한 과제는 왕릉의 공간과 벽화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술적 접근은 경주 석굴암의 모바일 XR 콘텐츠 개발에도 이어진다. 석굴암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유리벽 너머의 제한된 시점에서 관람해야 한다. 모바일 XR 기술을 활용하면 태블릿을 통해 석굴 내부의 공간 구조와 본존불을 비롯한 조각상의 배치를 다양한 시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실제 관람 위치와 가상공간을 연결하는 공간 정합 및 시점 동기화 기술은 몰입감 있는 체험을 구현하는 핵심 요소다.

접근제한 된 석굴암을 모바일 XR 콘텐츠로 공간 탐색 화면.

여기에 AI 기반 지능형 해설을 결합하면 문화유산 관람 방식은 한층 발전할 수 있다. 관람객이 “왜 석굴암 본존불 주변에 여러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나요?”라고 질문하면 AI가 관련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형적 특징과 불교적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검증된 학술자료를 검색해 답변하는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적용하면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고, 관람객의 연령과 언어에 맞춘 해설도 가능해진다.

이제 문화유산 관광은 유적을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문객이 직접 질문하고 탐색하며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경험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관람객의 이해도와 몰입감, 사용 편의성을 함께 검증하는 사용자 경험(UX) 연구도 중요하다.

디지털 헤리티지의 미래는 사라진 과거를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AI-XR 기술을 통해 과거의 기록을 오늘의 질문과 연결하고, 누구나 쉽고 깊이 있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백제 왕릉과 신라 석굴암까지, 서로 다른 문명의 시간을 오늘의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AI-XR 디지털 기술이 문화유산에 더해야 할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김기홍 박사

필자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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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대학교 디지털 헤리티지 공학박사이자 AI-XR 융합기술 연구자, 콘텐츠 기획자다. KAIST 문화기술연구소 및 KAIS 증강현실연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큐리오커넥트 대표로서 인공지능(AI)과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 및 실감형 콘텐츠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다. 창덕궁, 백제왕릉원, 황룡사, 석굴암 등 주요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디지털 복원과 사용자 중심의 체험 콘텐츠 개발에 참여해 왔다. 2024년 국가유산 디지털 콘텐츠 경진대회에서 국가유산청장상을 수상했으며, 디지털 기술을 통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미래 문화관광의 발전 방향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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