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기록하고 복원하는 디지털 기술을 실제 콘텐츠와 서비스로 연결하기 위한 현장의 과제가 제시됐다. AI가 역사 기록을 정확하게 읽도록 데이터를 정비하고, 관람객의 배움과 참여를 설계하는 한편, 완성된 콘텐츠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소비될 통로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18일 국립공주박물관 강당에서 진행된 ‘2026 디지털헤리티지페스타 산업 컨퍼런스’ 두 번째 세션은 ‘기술에서 콘텐츠와 서비스로’를 주제로 구성됐다. 유승민 텍스트웨이 대표, 이애진 플로우디엑스 대표, 김군호 에이콘팩토리 대표, 이경태 엘팩토리 대표가 데이터와 교육, 전시공간, 플랫폼의 관점에서 활용 방안을 다뤘다.
유승민 대표는 문화유산 자료의 디지털화와 AI가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은 별개의 과제라고 짚었다. 고해상도 촬영과 3D 스캔, 보고서 전자화가 이뤄졌어도 문장 사이의 맥락과 인물의 역할, 출처, 추정과 확정의 구분까지 AI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문화유산 기록에 한문과 서로 다른 인명·지명 표기, 다양한 연대 표기, 원문과 후대의 해석이 섞여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료를 잘게 나눠 검색하는 과정에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끊기거나, 추정을 나타내던 표현이 빠져 확정된 사실처럼 답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 대표는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은 아닌데 필요한 낱말들이 빠져나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자료에 있는 텍스트의 구조를 먼저 제대로 해석하고 그래프에 얹었을 때 근거가 붙은 답변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인명·지명·연대 표기를 통일하는 정규화 ▲문서의 논리와 관계를 복원하는 구조화 ▲출처와 근거를 연결하는 지식화 ▲이용자별 질문에 맞추는 서비스화를 제시했다. 같은 기록도 관람객에게는 쉬운 해설로, 연구자에게는 원문과 근거로, 교육 현장에는 수업 자료로 제공할 수 있도록 기반부터 갖추자는 것이다.
유 대표는 “추정을 추정이라고 반드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데이터를 구조화하면 다음에 어떤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결과물에서 원문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애진 대표는 이러한 기록이 교육과 체험으로 이어질 때 필요한 설계를 설명했다.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사진을 여러 AI에 보여주고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답변이 달랐던 사례로 발표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믿을 수 있는 공식 데이터, 즉 근거와 사료, 기록에 닿을 수 있었느냐가 AI 답변의 수준을 결정한다”며 기술을 활용한 문화유산교육에서도 근거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교육 경험의 변화는 ▲유물과 대화하기 ▲과거의 공간을 걷기 ▲학생이 역사를 직접 재현하기 ▲역사 속 인물의 선택 앞에 서보기로 정리했다. 생성형 AI와 XR을 통해 설명문을 읽고 유리 너머로 관람하던 방식에서 참여하는 학습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감 나는 공간 자체가 학습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대표는 몰입과 학습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을 소개하며 “몰입은 문을 열 뿐, 배움은 설계가 만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체험 전에는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고, 체험 중에는 수행할 미션을 부여하며, 체험 후에는 경험을 자신의 말로 정리하도록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공간을 정교하게 짓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게 할지에 대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공주에 적용할 미래 구상으로는 학생들이 공산성 발굴 기록에 근거해 웅진 왕궁의 공간을 가상으로 재현하고, 그 자리에 서서 설계의 이유를 설명하는 학습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AI에게 먼저 근거를 줘야 하고 마지막 확인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진짜 같을수록 근거는 더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김군호 대표는 논산 백제군사박물관 호국관을 어린이 AI 체험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겪은 기획과 구현의 문제를 공유했다. 노후한 영상관과 무기 전시공간을 개편하는 사업이 초기 역사체험관 구상에서 AI 미래도시를 주제로 한 공간으로 변경된 사례다.
초기에는 백제 성벽을 쌓고 오르는 놀이터와 작품 제작, 코딩 체험 등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 기관장 보고 이후 AI 체험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공간과 콘텐츠를 다시 설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어린이 체험관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함께 안정성과 내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박물관에서는 가장 안정적이고 검증받은 매체가 적용된다”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면 파손이 많기 때문에 가장 튼튼한 매체를 적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완성된 공간은 2050년 미래 논산을 배경으로 구성했다. 1층은 놀이를 통해 도시의 에너지를 밝히는 ‘AI 어드벤처’, 2층은 대화형·지능형·생성형 AI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구분했다. AI 선생님과의 대화, 직접 구성한 도로에서 움직이는 자율주행 모형 자동차, 단어를 조합해 미래도시 이미지를 만드는 체험 등을 배치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어린이가 이용하는 전시환경에 맞춰 인터페이스도 조정했다. 김 대표는 “체험공간에서는 휴대전화처럼 길고 자세하게 쓸 수 없고 빨리 체험해야 하기 때문에 프롬프트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그래픽화해 조합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대화형 AI 역시 답변 주제와 길이를 제한해 체험 목적에 맞추는 방식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경태 대표가 다룬 주제는 완성된 디지털 헤리티지 콘텐츠를 일상에 전달하는 구조다. 기록과 복원, 실감형 전시를 거쳐 제작한 콘텐츠가 특정 장소나 일회성 행사에 머무는 한계를 짚고, 디바이스와 플랫폼을 통한 지속적인 향유를 확장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 대표 발표의 핵심 메시지는 “제작의 혁신은 끝났다, 이제 전달의 혁명이 필요하다”였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술과 함께 거실과 서재, 학교와 로비 등 생활공간에서 이를 감상할 접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확산의 조건으로는 ▲작품의 질감과 사용 편의성을 갖춘 하드웨어 ▲저작권 보호와 거래·스트리밍을 지원하는 플랫폼 ▲복원된 문화유산과 AI 미디어아트 등 콘텐츠의 결합을 제시했다. 아트 플랫폼 아티비아의 LG 스마트TV ‘갤러리플러스’ 입점과 백자상감모란문병 콘텐츠 등을 사례로 담았다.
이 대표의 구상은 지역 유산을 디지털 콘텐츠로 재해석해 세계인의 생활공간에 전달하고, 스트리밍과 저작권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맞춰졌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일상에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제작과 유통을 연결하자는 것이다.
이날 후속 프로그램에는 ‘콘텐츠에서 예술·장소·지역으로’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세션도 편성됐다. 이유경 백석문화대 교수는 ‘AI, 유산에 숨을 불어넣다’를 통해 기록 중심의 아카이브를 몰입과 상호작용, 서사를 갖춘 경험으로 확장하는 방향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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