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상자산 과세, 미룰 때가 아니라 정교하게 다듬을 때

기본공제액·취득가액 산정 등 세부 기준 마련이 관건

기자수첩입력 :2026/08/12 13:32

가상자산 과세를 또 미루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가상자산 과세 시점을 2030년으로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업계에선 반길 만한 이야기지만 이번에도 실제 유예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이미 세 차례 미뤄졌다.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놓고 시행 시점이 다가올 때마다 유예를 반복했다. 한두 번은 시장과 제도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네 번째 유예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법을 만들어놓고 계속 집행하지 못한다면 과세당국과 정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 일정을 보면 내년 시행 가능성이 크다. 2027년에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 2028년 총선이 예정돼 있고 이후에는 203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대선 준비에 돌입한다. 투자자에게 새로운 세 부담을 안기는 정책을 선거 직전에 밀어붙이기는 어느 정부나 부담스럽다.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 의지를 갖고 있다면 사실상 내년이 가장 현실적인 시행 시점인 셈이다.

소득이 발생한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가상자산 투자로 이익을 얻었다면 일정 수준 세금을 내는 것도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필요하다. 논점은 ‘과세 시행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다.

현재 연 250만원인 기본공제액이 적정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따른 국내 주식과의 과세 형평성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기본공제액이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상자산 과세(이미지=챗GPT)

취득가액과 거래 수수료 같은 필요 경비를 어떤 기준으로 인정할지도 명확해야 한다. 에어드롭과 스테이킹, 디파이(DeFi), 채굴, 코인 간 스왑처럼 전통 금융자산에 없는 거래도 어떤 방식으로 ‘손익’을 계산할지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지불하는 가스비를 비용으로 인정할지도 정리돼야 한다.

해외 거래소 문제도 있다. 국내 거래의 경우 가상자산 사업자가 보유한 거래내역을 통해 손익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는 상황이 다르다. 가상자산이 해외로 이전됐다는 사실과 현지에서 얼마의 수익을 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만 과세하고 해외 거래소나 디파이를 이용한 투자자 소득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조세 불공정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과세를 계속 미룰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제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논리라면 변화가 빠른 가상자산 시장에서 과세는 영원히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시장 침체를 이유로 유예한다면 다음 침체기에도 같은 주장이 반복될 것이다.

세 차례 유예로 충분한 시간은 확보했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네 번째 유예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공제액과 취득가액 산정, 필요 경비 인정, 해외 거래소 소득 포착 등 남은 사각지대를 정교하게 메우는 것이다.

관련기사

가상자산 과세는 내년 시행하되 세부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납세자가 얼마를 벌었고 무엇을 비용으로 인정받으며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세금을 걷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공정하게 걷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