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몸이 지나간 자리, 움직임은 남는다

유지민 ‘잔류하는 움직임’…관람자의 감각에서 다시 살아나다

전문가 칼럼입력 :2026/08/12 09:16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 오래된 시간의 결이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할 때 문화자원은 공연과 전시, 도시와 공간, 콘텐츠와 산업의 언어로 확장됩니다. 정책과 현장,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오늘의 콘텐츠와 경험으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좋은 동시대 예술은 완성된 뒤에도 계속 움직인다. 관람자가 가까이 다가가고 한 걸음 물러서는 사이 작품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전시장을 떠난 뒤에는 몸과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지난주 성남큐브미술관에서 만난 유지민의 ‘잔류하는 움직임’이 그랬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소장 · 예술경영학박사(Ph.D. in Arts Management)

전시장에 들어서자 발이 먼저 보였다. 몸을 웅크린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누르는 발과 몸을 붙든 손이 화면의 중심에 남았다. 인물의 표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관절과 근육이 말을 걸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보다 이 몸이 얼마나 오래 그 자세를 버텼는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이 전시에서 본 것은 요가의 자세가 아니었다. 움직임이 몸을 지나 재료에 머무는 방식이었다.

전시설명에 따르면 유지민은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하며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회화와 조형에 담아왔다.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하는 수련은 그리는 행위와 만나 ‘집념’으로 이어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집념은 극한의 의지나 완벽한 자세와 거리가 있었다. 같은 일을 다시 하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차이를 알아차리는 태도였다. 몸은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 사이에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한쪽 벽에는 작은 신체 드로잉이 여러 줄로 걸려 있다. 검은 몸은 접히고 펴지며 서고 눕는다. 멀리서 보면 움직임을 기록한 악보처럼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자세마다 번짐의 농도와 선의 흔들림이 다르다. 비슷한 형상이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은 몸은 하나도 없다.

반복은 같음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 차이를 쌓는 시간이다.

유지민 ‘잔류하는 움직임’ 전시 전경. 반복되는 소형 신체 드로잉과 대형 인체 회화가 수련의 시간과 신체의 잔상을 드러낸다.

대형 인체 회화 앞에서는 그 차이가 무게로 다가온다. ‘수련의 잔상-파사사나3’ 속 신체는 화면을 가득 채운 채 웅크리고 있다. 무릎과 팔이 겹치고 손은 발목을 붙든다. 몸의 일부가 화면 밖으로 잘리면서 자세의 압력은 더 커진다.

가까이 다가서면 목탄의 흔적이 보인다. 검게 눌린 자리와 손으로 문질러 희미해진 자리가 맞물려 있다. 선은 신체의 외곽을 매끈하게 가두지 않는다. 번지고 지워진 자국이 몸의 부피를 만든다. 화면 속 몸이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화면 밖에서는 그리는 사람의 손과 팔이 움직였다. 수련하는 몸과 그리는 몸이 한 화면에 포개진다. 작품이 살아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시는 평면에서 조형으로 이어진다. 비스듬히 세운 가벽에는 신작 ‘100겹의 수련’을 이루는 100개의 검은 조형물이 놓여 있다. 정면에서 보면 검은 기호의 집합처럼 보인다. 옆으로 걸으면 각각의 돌출과 간격이 나타난다. 100은 완성을 알리는 숫자보다 몸이 지나온 시간을 세는 단위로 읽힌다. 한 번의 움직임은 사라지지만 되풀이된 움직임은 형태를 얻는다.

측면의 ‘집념의 형상화’ 연작에서는 사람의 몸이 거의 사라진다. 중첩된 검은 덩어리가 화면 밖으로 솟아 있다.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관람객도 움직여야 한다. 정면에서 보고 옆으로 몸을 틀고 다시 몇 걸음 물러나야 깊이가 드러난다. 작가의 몸에서 출발한 움직임이 관람객의 걸음으로 이어진다.

유지민 ‘잔류하는 움직임’ 전시 전경. 회화에서 조형으로 이어지는 작품의 흐름과 관람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내가 컨템포러리 예술에서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다. 동시대 예술은 지금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과 관람자가 계속 관계를 맺고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현재의 예술이 된다. 작품은 벽에 걸려 있지만 감상은 벽에 머물지 않는다.

아쉬움도 있다. 얼굴을 지우고 흑백으로 제한한 선택은 인물의 서사를 열어두는 동시에 작품 사이의 감정 차이를 좁힌다. 웅크린 몸이 계속되면서 비슷한 긴장이 반복되는 대목도 있다. 개별 작품의 감정이 조금 더 선명하게 갈라졌다면 전시의 호흡은 한층 풍부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시가 평평해지지 않는 것은 크기와 재료, 공간의 흐름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은 드로잉에서 대형 회화로 이동하고 다시 조형물이 놓인 좁은 통로로 들어간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물러서고 정면에서 보다가 옆으로 걷는다. 관람자의 몸이 움직일 때 작품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K-아트의 힘도 이런 개별 창작자의 오래된 수련에서 나온다고 본다. 예술의 뿌리는 거대한 구호보다 한 사람의 몸과 일상에 가깝다. 그 안에서 길어 올린 감각이 동시대 예술로 구현될 때 로컬의 작업은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넓어진다.

2026 성남작가조명전의 성과도 작가의 이름을 한 번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축적된 작업을 충분한 공간에서 펼치고 관객과 비평을 만나게 해야 한다. 한 번의 전시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길도 필요하다. 지역 미술관은 그 연결이 시작되는 장소다.

전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9월 19일까지 격주 토요일에는 ‘Morning Sequence-작가와 함께하는 아침 요가’가 이어진다. 화면에서 보았던 압력과 호흡을 자신의 몸으로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상설전시실에서 계속된다.

작품 앞에서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한 걸음 물러서 보고 좁은 통로를 천천히 걸어볼 것. 화면 속 몸은 멈춰 있지만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몸이 지나간 자리에는 움직임이 남는다. 살아 있는 예술은 그 움직임을 다른 사람의 몸에서 다시 시작하게 한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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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학박사(Ph.D.). 콘텐츠 디렉터이자 예술-기술 칼럼니스트다.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서 문화자원과 오래된 장소의 가치를 오늘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이를 콘텐츠와 디지털 기술, 공간과 도시 경험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부터 글로벌 IT 미디어 지디넷코리아(ZDNET Korea)의 오피니언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현재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 ‘명경(名景)’을 운영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

Heritage LAB 소장ㆍ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Media-Art Director
지디넷코리아 고정 필진 [이창근의 헤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