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의 헤디트] 부채 이전의 바람, 파티 이후의 몸

강요찬 Büchae와 박수윤 무제: 쿠쿠가 다시 물은 한국적 컨템포러리

전문가 칼럼입력 :2026/08/11 10:43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 오래된 시간의 결이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할 때 문화자원은 공연과 전시, 도시와 공간, 콘텐츠와 산업의 언어로 확장됩니다. 정책과 현장,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오늘의 콘텐츠와 경험으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몸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미디어다. 생각을 움직임으로 드러내고 보이지 않는 감각을 공간에 남긴다. 내게 컨템포러리 댄스는 몸이 동시대의 기술과 환경, 관계를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새로워 보이는 동작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몸과 공간, 매체로 어떻게 구성했느냐다.

1997년 시작해 올해로 29회를 맞은 크리틱스초이스(Critics’ Choice)는 ‘평론가의 선택’을 창작의 기회로 전환해온 춤축제다. 월간 댄스포럼이 주최·주관하며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발레의 경계를 넘어 청년 안무가에게 대극장 신작 초연의 기회를 제공한다. 2026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서울예술축제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든 작품을 규모 있는 군무로 제작해 국내외 예술제로 유통될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특화돼 있다.

올해는 ▲김원영 ‘교차’ ▲우지영 ‘지진: 러브웨이브’ ▲장두익 ‘스태프 온리’ ▲박민지 ‘체리피커’ ▲김다애 ‘게팅옐로우’가 처음 선정됐다. 여기에 기존 수상자인 ▲이해니 ‘에그.jpg’ ▲강요찬 ‘Büchae’ ▲박수윤 ‘무제: 쿠쿠’가 다시 초청됐다.

무용평론가이자 월간 춤 편집장을 거쳐 월간 댄스포럼을 이끌어온 김경애 발행인은 크리틱스초이스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윤대성 편집장은 기록과 감독을 맡아 축제의 현재를 주도한다. 안무가를 선택하고 작품을 제작하며 평가와 재초청으로 성장을 확인하는 구조는 단순한 공연기획이 아니다. 창작자를 발견해 콘텐츠로 성장시키는 예술경영의 플랫폼이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소장·예술경영학박사(Ph.D. in Arts Management)

지난 9일 월간 댄스포럼의 독자로 초대받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두 작품을 봤다. 나는 안무의 기법 자체를 논평하기보다 몸과 미디어, 공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관객 경험을 만드는지에 주목했다.

강요찬 Büchae, 부채를 지우자 바람이 보였다

‘Büchae’는 부채춤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다. 강요찬 안무가(前 독일 비츠토크 도세 파크 아트 레지던시 상주예술가, 前 이탈리아 볼로냐 아트팩토리 인터내셔널 트레이너)는 부채춤의 화려한 외형을 재현하는 대신 부채가 만들어지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인간은 바람을 만났고 바람을 필요로 했으며 마침내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부채는 전통의 상징이기 전에 기술이고 매체이며 몸의 감각을 확장하는 인터페이스로 읽혔다.

황토색의 접힌 종이 오브제는 종이학이나 아직 펼쳐지지 않은 부채를 떠올리게 했다. 무용수들은 그 사이를 이동하며 바람의 방향과 밀도를 몸으로 그려냈다. 내레이션과 입체적인 사운드는 작품의 질문을 따라갈 생각의 길을 열었다. 조명과 포그는 무대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까지 감각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꿨다.

강요찬 안무작 Büchae의 커튼콜. 조명과 포그, 황토색 종이 오브제가 작품의 공간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미디어퍼포먼스의 관점에서 조명과 포그는 춤을 꾸미는 효과에 머물지 않았다. 몸에서 시작된 움직임을 공간 전체로 확장하고 보이지 않는 바람을 관객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매체로 작동했다. 빛이 무용수의 몸을 통과해 포그 속에서 흩어질 때 바람은 잠시 만질 수 있는 물질처럼 다가왔다. 기술이 감각을 드러내고 몸이 그 기술에 생명을 부여한 순간이었다.

다만 내레이션이 의미를 먼저 설명할 때는 몸이 스스로 말할 여백이 줄어드는 듯했다. 강한 조명과 포그가 만든 이미지가 무용수의 세밀한 호흡보다 앞서 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기술은 몸을 확대할 때 힘을 얻지만 몸을 대신하는 순간 작품의 중심을 흔들 수 있다.

그럼에도 강요찬은 전통의 외형을 반복하지 않고 전통이 태어난 원리를 탐구했다. 그가 지운 것은 부채가 아니라 부채춤을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이었다. 〈Büchae〉는 헤리티지가 완성된 형식의 보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몸과 기술을 통해 거듭 해석되고 감각되는 것임을 보여줬다. 한국무용의 뿌리를 동시대의 무대 언어로 다시 사유한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였다.

박수윤 무제: 쿠쿠, 파티 이후의 몸을 묻다

인터미션의 공기가 채 가라앉기 전에 공연이 스며들었다. 무대 위 사람들이 뒤섞이고 음악과 움직임이 번지면서 관객은 어느 순간 파티장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시작을 분명하게 선언하지 않은 연출은 관객을 안전한 관찰자에서 작품의 환경을 구성하는 외부 자극으로 바꿨다.

프로그램북이 설명한 ‘쿠쿠’는 단순한 광기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는 몸이 타인과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며 흔들리고 다시 배열되는 상태였다. 강렬한 전자음악과 라이브 사운드는 관객의 감각을 압박했다. 동시대의 일상복을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빠르게 충돌하고 흩어졌다.

무대 양쪽의 구조물과 대형 팬, 공간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빛은 불안정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 음향과 조명, 구조물은 춤을 담는 배경이 아니었다. 몸의 선택을 바꾸는 능동적인 매체이자 또 다른 외부 조건으로 작동했다. 몸과 미디어, 공간은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감각적 환경을 형성했다.

박수윤 안무작 무제: 쿠쿠의 한 장면. 무용수와 무대 위 사람들이 뒤섞인 가운데 조명과 구조물, 라이브 사운드가 파티장 같은 감각적 환경을 형성했다.

박수윤 안무가(국립무용단 상임단원, 댄스필름 쑤컴 대표)는 한국무용의 전형적인 춤사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한국무용을 수련한 몸으로 동시대 도시인의 속도와 흥분, 피로를 포착했다. 한국적인 것은 특정 동작이나 의상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몸에 축적된 호흡과 관계의 감각이 오늘의 환경을 만날 때 새로운 한국적 컨템포러리가 태어난다.

마지막에 등장한 침대는 내게 파티 뒤의 단순한 휴식처로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극받은 몸이 마침내 도착한 욕망과 소진의 장소로 읽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과연 스스로 멈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됐다.

다만 음악과 장면의 강도가 계속 높게 유지되면서 몸과 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가 감각의 파고에 묻히기도 했다. 내게는 자극이 잠시 비워지는 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마지막에 남은 몸과 호흡이 더욱 깊은 잔상을 만들었을 듯하다.

초연을 넘어, 다음 시대의 춤으로

크리틱스초이스의 가치는 수상자를 가리는 데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춤의 기반에서 출발한 안무가를 발견하고 대극장 신작으로 제작하며 평가와 재초청으로 성장을 확인하는 데 있다. 모든 작품을 신작으로, 규모 있는 군무로 초연하는 원칙은 창작자의 발상을 유통 가능한 공연콘텐츠로 성장시키는 제작 시스템이다.

이제 다음 과제는 초연 작품을 국내외 예술제와 재공연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안무가의 생각과 창작 과정, 무대기술의 설계 그리고 관객 반응도 디지털 아카이브로 축적해야 한다. 공연은 막이 내리면 사라지지만 그 과정이 기록되고 다시 경험될 때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이 된다.

강요찬과 박수윤의 무대는 한국적 컨템포러리가 전통의 표면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한국무용을 수련한 몸에 축적된 호흡과 리듬과 관계의 감각은 K-헤리티지의 원천이 된다. 그 감각이 동시대의 질문과 미디어, 공간을 만나 새로운 관객 경험으로 창작될 때 K-콘텐츠가 된다. 세계의 관객과 감각을 나눌 때 비로소 K-컬처로 확장된다. 그 모든 확장의 출발점에는 오랜 시간 몸을 단련해 무대에 선 무용수들이 있다.

크리틱스초이스가 30년을 앞두고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장르의 문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춤의 뿌리를 존중하면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움직임을 발견하고 창작자가 다음 무대로 나아갈 길을 여는 일이다. 평론가의 선택은 작품을 고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선택이 창작자를 다음 무대로 보내는 힘이 될 때 축제의 의미도 완성된다.

*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

필자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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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학박사(Ph.D.). 콘텐츠 디렉터이자 예술-기술 칼럼니스트다.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서 문화자원과 오래된 장소의 가치를 오늘의 감각으로 해석하고, 이를 콘텐츠와 디지털 기술, 공간과 도시 경험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부터 글로벌 IT 미디어 지디넷코리아(ZDNET Korea)의 오피니언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현재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 ‘명경(名景)’을 운영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

Heritage LAB 소장ㆍ예술경영학박사(Ph.D.)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 Media-Art Director
지디넷코리아 고정 필진 [이창근의 헤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