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채굴, 이대로 괜찮나?...머스크가 던진 화두

비트코인 성장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

기자수첩입력 :2021/05/17 08:04    수정: 2021/05/17 16:19

혼돈하다. 세계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마음이 지금 이럴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입 방정 때문이다. 그가 '코인판'에 뛰어들기 전까지 이 세계는 제법 안온했다.

대장주인 비트코인 가격은 우상향으로 힘차게 질주했고,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믿고 기다린 보상을 받을 차례였다. 여기에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긍심도 포함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라던 조롱을 이제 막 되받아쳐 줄 타이밍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 바닥에 발을 들이고 난 뒤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을 받고 테슬라를 팔겠다더니, 40일 만에 말을 바꿨다. 더 나아가 이제 도지코인은 어떻겠냐고 한다. 머스크의 말 한 마디에 각종 코인 가격이 널을 뛰고 있다. "비트코인 그거 사기 아니냐"는 역공이 다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겼다.

성공한 기업가이자 스타성까지 겸비한 머스크가 비트코인 지지를 선언했을 때 업계는 환호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암호화폐 산업의 엑스맨이 됐다.

일론 머스크(이미지=미국 지디넷)

그가 만든 혼돈 속에 제법 괜찮은 화두도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비트코인과 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방법은 거칠었지만 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시 탐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사실 머스크가 비트코인 결제 지원을 철회하는 이유로 환경 오염을 지목한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비트코인 채굴(새 비트코인이 발행되는 작동 방식)이 전력 소모적이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까? 이제와서 갑자기 환경 문제를 꺼내든 건, 그 변덕을 설명할 이유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비트코인과 환경에 대한 논쟁은 언제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지나치게 전력 낭비적인 채굴 방식은 비트코인의 아킬레스건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비트코인에 비관론적인 입장을 보이며 이 문제를 지적했다.

비트코인 채굴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쓸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소속 연구기관인 '케임브리지 센트레 포 얼터너티브 파이낸스'는 이 문제를 꽤 오랫동안 탐구해 오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비트코인의 전력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그 수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다각도로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비트코인 전력 소비량은 말레이시아와 비슷하다. (이미지=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비트코인 채굴에 소비되는 젼력은 연환산 기준 147테라와트시(TWh)다. 말레이시아 전체가 연간 소비하는 전력과 비슷한 규모다. 전력 소비가 많은 국가를 일렬로 줄 세웠을 때 비트코인은 26번째 순서에 들어간다. 또, 147TWh는 미국 내 모든 가전제품을 1.5년 동안 작동시킬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엄청난 에너지가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는 에너지원이 어디서 왔는지도 중요하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채굴에 쓰는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게 되면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 채굴에는 의외로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많이 쓰인다. 역시 케임브리지 연구소 연구결과다. 연구소가 전 세계 채굴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76%는 친환경 에너지를 일부라도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채굴 시설들이 가장 많이 채택한 에너지원은 수력(62%), 석탄(38%), 천연가스(36%), 풍력(17%), 석유(15%), 태양광(15%), 원자력(12%), 지열(8%) 순이다.

비트코인 채굴에 친환경 에너지가 점점 더 선호되고 있다는 신호도 읽힌다. 비트코인 채굴에 쓰이는 친환경 에너지 비율은 아직 39%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전력 소비 중 친환경 에너지를 쓰는 비중은 28%로 더 낮다. 오히려 비트코인 채굴이 친환경 에너지 도입에 선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 열성 지지자 잭 도시가 이끌고 있는 핀테크 기업 스퀘어는 친환경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1천만 달러(약 112억원)를 출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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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더 성장해 제도권 금융 시스템과 어깨를 견주어 보려면, 비트코인 커뮤티니 전체가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속도를 내야 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수록 환경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채굴 경쟁이 치열해져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투입된다. 실제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였던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면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전력 소비량은 2.5배 늘어났다.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더 오른다면 채굴에 따른 환경 오염이 더 심각한 문제로 부상할 수 있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머스크가 중요한 시점에 '비트코인과 환경'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