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9일 기각됐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삼성 변호인단은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8일) 오전 10시30분부터 이 부회장과 최 전 실장, 김 전 팀장에 청구된 구속영장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 9일 오전 2시께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불구속재판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 사건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측은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며 "다만 영장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 삼성 변호인단은 "법원의 기각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는 해석을 내놓으며,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1년 8개월간 수사를 이어왔다. 지난 4일 이 부회장과 삼성 일부 임원에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 삼성 전·현직 고위 간부들을 수차례 조사,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증거가 수집돼 있다"는 사유로 기각됐다.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은 전날 영장 심의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주요 혐의와 사안의 중대성을 들어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이 부회장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게 진행됐으며 합병 성사를 위해 고의적으로 시세 조종을 했다는 검찰 의혹과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이로써 이 부회장 측이 지난 2일 외부 전문가들에게 기소 타당성 여부 판단을 위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절차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기 위한 제도로, 이 부회장의 영장이 발부될 경우 사실상 무력화될 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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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이 부회장과 김 전 팀장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원회를 연다. 부의심의위에서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하면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구속을 피하게 되면서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됐다. 다만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삼성 측은 검찰의 기소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우선 수사심의위에 기대를 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