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인텔 프로세서 수급난이 1년여가 됐다. 그동안 세계 PC 제조사는 물론 서버 제조사까지 인텔 프로세서에 의존하는 모든 기업들이 제품 출시 지연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 프로세서 수급난 이후 동향과 파장 등을 상·중·하 편으로 나눠 살펴 본다. [편집자주]
많은 제조사와 소비자들은 지난 주 초만 해도 인텔 프로세서 수급난이 머지 않아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기대는 20일(현지시간) 인텔이 내놓은 공개서한 한 장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외 PC 제조사들은 일제히 혼란에 빠진 상태다. 특히 10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트북 신제품은 출시 시기 연기 등이 불가피하다. 일부 제조사는 저가·보급형 제품에 탑재되는 인텔 코어 프로세서를 AMD 라이젠 등 프로세서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 인텔 "생산량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인텔은 20일 고객사와 협력사를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마이클 존스턴 홀터스 부사장 명의의 이 공개서한에서 인텔은 "올해 14nm(나노미터) 공정의 웨이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기록적인 투자를 계속했고 올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 프로세서 공급량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텔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시장 성장이 인텔의 공급량은 물론 제3자 예측을 벗어났으며 사업 영역에서 수급난과 출하 지연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지속되고 있는 수급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조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복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텔은 20일 공개 서한을 웹사이트에 올린 데 이어 전세계 고객사와 협력사를 대상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통지한 상태다.
■ 전세계 제조사들, 성수기 앞두고 일제히 패닉
전세계 PC 제조사들은 인텔 공개서한을 두고 일제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연말 연시를 앞두고 인텔 10세대 코어 프로세서(코멧레이크)를 탑재한 노트북 신제품을 출시하려던 계획을 대거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IDC 등 시장조사업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노트북이 가장 잘 팔리는 시기는 졸업과 입학 등 신학기를 앞둔 1분기다. 이 시기에 판매량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출하 물량은 물론 매출 모두 하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노트북 뿐만 아니라 데스크톱 PC 생산 역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26일 국내 중견 PC 제조사 한 관계자는 "지난 주 이후 8·9세대 코어 프로세서 공급 가격이 도로 올랐다. 조달 시장 담당자들 역시 이미 계약된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PC 제조사 관계자 M씨 역시 "지난 주 공개 서한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고지를 이미 받은 상황이다. 최신 프로세서를 투입하는 제품은 적어 상대적으로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리다매로 팔리는 일부 모델에는 인텔 프로세서 대신 AMD 프로세서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IDC·가트너 등 시장조사업체 기준 전세계 상위 업체와 달리 구매 물량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내 기업들은 우선 순위 면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장에서는 슬림노트북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특정 회사의 신제품 투입이 크게 지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수요 넘친다"는 인텔 해명에도 불신은 여전
인텔은 프로세서 수급난이 불거진 이후 지속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 '예측을 벗어난 수요' 등을 그 원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소비자나 시장 관계자, 제조사 관계자 등은 이런 인텔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인텔이 지난 해 초부터 확충한 14nm 생산 시설의 수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한 전문가는 몇 년 전 "인텔이 삼성과 퀄컴 등을 견제하기 위해 14nm 공정을 서둘러 시작했지만 공정에서 수율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이것이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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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14nm 공정을 4년 이상 운용해 왔으며 관련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번 문제는 수율 등 국지적인 문제와 거리가 먼 예상 밖의 상황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인텔은 공개 서한과 수율, 공정 관련 추측 등 지디넷코리아 질의에 "공개 서한 이외에 추가로 내놓을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