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보다 특허…성숙해진 자율주행 시장의 새 경쟁법칙

[자율주행 IP 전쟁] ① 기술 경쟁 넘어 특허 경쟁 시대

카테크입력 :2026/06/02 17:47

AI와 자율주행 기술 경쟁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기업 간 승부처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알고리즘 성능과 기술 시연이 경쟁력의 척도였다면, 이제는 특허와 표준 선점, 사업화 역량이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의 평가 기준이 지식재산권(IP) 경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지디넷코리아는 3회에 걸쳐 자율주행 시장의 새로운 경쟁 법칙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자율주행의 '눈'으로 불리는 3D 서라운드뷰 라이다를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벨로다인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특허 확보에 집중했다. 시장이 성장하자 경쟁사 쿼너지는 핵심 특허인 '558 특허' 무효화를 시도했지만, 미국 특허심판원(PTAB)과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잇따라 벨로다인의 손을 들어줬다.

방어에 성공한 벨로다인은 곧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중국 라이다 기업 헤사이와 로보센스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두 회사는 벨로다인에 선급 기술료를 지급하고 제품 판매량에 따라 로열티를 내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합의 규모가 수백만 달러 수준에 이른 것으로 봤다.

이 사례는 첨단 기술 시장에서 특허가 단순한 권리 보호 수단을 넘어 수익 창출과 시장 지배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임을 보여준다. 최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경쟁의 무게추가 알고리즘 성능에서 특허와 지식재산권(IP)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율주행 이미지 (사진=클립아트코리아)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의 시연 성과보다 차량 수백만 대에 실제 탑재됐을 때의 양산 신뢰성과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특허 경쟁력에 더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1차 협력사를 선정하는 과정도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기술력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산차에 적용할 기술이 글로벌 특허 분쟁 환경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즉 IP 라이선스 리스크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수주전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자율주행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기업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객체 인식 정확도나 주행 성능이 핵심 평가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특허 포트폴리오가 수주 경쟁력을 좌우하는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미지 인식과 뉴로모픽 컴퓨팅 등 자율주행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원천 특허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추세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해 기존 반도체 환경에서도 저전력으로 복잡한 AI 연산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차가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만큼 관련 기술의 선점 여부가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일 특허보다 수백 건 규모의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도 중요해지고 있다.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견제하는 동시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와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빌아이와 퀄컴 등은 컴퓨터 비전과 차량용 통신 분야에서 구축한 대규모 특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폭스바겐,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해 왔다.

이는 특허 보유량이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자율주행 시장에서 사업 지속성과 협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세 자릿수' 특허인가…자율주행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

첨단 기술 산업에서 특허는 단순한 권리 확보 수단을 넘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자율주행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 중인 웨이모 (사진=지디넷코리아)

구글 웨이모가 보유한 'US9383753B1' 특허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자율주행 차량이 주행 중 수집한 센서와 지도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경로를 수정하는 기술을 다룬 이 특허는 웨이모가 자율주행 시장에서 중국 바이두, 이스라엘 모빌아이 등 경쟁 기업보다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기반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특허 포트폴리오 규모가 기업의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사업 지속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허 출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기술이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특허 확보는 단순한 권리 보호를 넘어 시장 주도권 확보와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특히 자율주행 시장에서는 단일 특허보다 다수의 특허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포트폴리오 구축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위험을 줄이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OEM)에 기술의 안정성과 사업 지속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인 스트라드비젼이 미국 등록 특허 170건(2026년 상반기 기준)을 확보한 점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 자율주행 기업 가운데 이례적인 규모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트라드비젼 자율주행차 (사진=스트라드비젼)

미국은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중심지이자 특허 분쟁이 빈번한 시장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미국 특허 확보 규모가 기업의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글로벌 사업 확장 과정에서의 협상력과 법적 안정성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스트라드비젼은 이미지 인식, 뉴로모픽 컴퓨팅, 딥러닝 최적화 등 자율주행 핵심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특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도로 위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예외 상황인 '엣지 케이스' 대응 기술과 연산 효율 개선 기술 등을 주요 특허 영역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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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산업이 기술 시연 중심의 경쟁 단계를 지나 양산과 상용화 경쟁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 역시 알고리즘 성능뿐 아니라 특허와 표준 선점, 사업화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주행업계 관계자는 "이제 자율주행 시장은 알고리즘 경쟁을 넘어 특허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기업의 가치는 얼마나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얼마나 강력한 특허로 보호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