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폐지를 추진하면서 내세운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연방무역위원회(FTC)였다.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들을 ‘정보서비스사업자’ 범주인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더라도 FTC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게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의 논리였다.
그런데 전자프론티어재단(EEF)을 비롯한 미국 시민운동 단체들이 그 부분을 이유로 FCC에 망중립성 관련 표결 연기를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아스테크니카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C의 관할권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망중립성을 폐지할 경우 자칫 규제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오는 14일로 예정된 전체회의 표결을 그대로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 FTC, AT&T 비커먼캐리어 영역 규제 가능할까
소비자단체들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 제9 연방순회법원에 게류돼 있는 FTC와 AT&T 간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 관련 공방이다.
AT&T는 2014년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이용자들이 매달 3GB와 5GB 이상 쓸 경우 속도를 늦추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자 FTC가 그해 10월 AT&T를 제소했다.
이 대목에서 관할권 문제가 불거졌다. AT&T는 유선전화 사업자이기 때문에 ‘커먼캐리어’ 의무가 있는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FTC에겐 규제 권한이 없다. 타이틀2는 FCC의 규제 영역이다.
하지만 AT&T의 서비스도 여러 층위가 있다. 문제가 된 데이터 서비스 쪽은 ‘커먼캐리어’에 해당되지 않는다. AT&T는 FTC가 ‘커먼캐리어’를 규제하는 건 월권이라고 맞섰다.
결국 FTC가 커먼캐리어인 AT&T의 비커먼캐리어 사업 영역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 양측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16년 8월 AT&T 손을 들어줬다. 커먼캐리어이기 때문에 FTC가 규제할 수 없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FTC는 커먼캐리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다른 서비스에 대해서도 규제 권한을 잃게 된다.
여기까진 AT&T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런데 제9순회항소법원은 지난 5월 전원합의체가 AT&T와 FTC 간 공방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EF를 비롯한 미국 소비자운동단체들이 FCC에 표결 연기를 요구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항소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유무선 ISP를 타이틀1으로 재분류할 경우 규제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항소법원이 전원합의체에서 재심리를 하겠다는 건 기존 판결에 허점이 있다는 의미다.
■ "판결 이후로 표결 연기" vs "그럴 필요없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전원합의체 재심리 결정이 나온 직후 이례적으로 환영 메시지를 낸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짓 파이 입장에선 FCC가 유무선 ISP를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더라도 FTC가 있기 때문에 관할권 공백은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비자 단체들은 “소비자들이 모든 보호 수단을 잃을 우려가 있는 만큼 FCC 표결은 제9순회항소법원의 전원합의체 결정이 나온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FCC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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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짓 파이 위원장은 “FCC의 일관된 요구에 따라 제9순회항소법원이 (AT&T 승소 판결을 한) 3인 재판부 판결을 전원합의체에서 재심리하기로 했다”면서 “이런 고려와 함께 재분류의 이점을 감안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긴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이유를 근거로 오는 14일로 예정된 FCC 전체회의의 망중립성 관련 표결을 그대로 강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