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중립성 원칙 폐기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망중립성 폐기를 골자로 하는 최종안(final draft)을 제출하면서 향후 추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 210쪽에 이르는 ‘인터넷 자유회복(Restoring Internet Freedom)’ 문건을 통해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들에게 유선전화사업자에 준하는 강력한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FCC는 오는 12월14일 아짓 파이가 제안한 문건 수용를 놓고 찬반 표결을 할 예정이다. 5명의 FCC 위원 중 3명이 공화당 출신으로 구성돼 있어 아짓 파이의 제안은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전망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망중립성 원칙 폐기는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FCC가 규칙을 바꾸더라도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가 2012년 처음으로 망중립성 원칙을 명문화했던 ‘오픈인터넷규칙’에 대해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 2014년 무효 판결을 한 적이 있다.
■ 2005년 '보니지 공방'으로 망중립성 논쟁 본격화
망중립성이란 소통의 근간이 되는 통신망은 차별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망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 사업자들을 차별하거나, 특정 콘텐츠를 차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이 명문화된 것은 2015년이었다. 2014년 항소법원에서 한 차례 패소했던 오바마 정부는 ISP들의 산업 분류를 유선전화사업자와 같은 타이틀2로 바꾸는 방법으로 망중립성 의무를 부과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아짓 파이가 내놓은 ‘인터넷 자유회복’ 문건은 2년 전의 분류를 원위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유무선 ISP들이 타이틀1 정보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될 경우 망중립성 의무를 지지않아도 된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FCC 내에서는 이 원칙이 확립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들이 법원에 제소할 경우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일단 망중립성 공방의 연원부터 한번 따져보자. 이 부분은 ‘망중립성’이란 말을 처음 만든 팀 우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잘 정리했다.
그 글에 따르면 미국에서 망중립성 공방이 본격화된 것은 2005년이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통신사업자인 매디슨 리버가 VoIP업체인 보니지를 차단하면서 공방이 시작됐다.
매디슨 리버의 행동이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란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마이클 파월이 이끌던 FCC는 매디슨 측에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 통신 및 인터넷 시장에서 망중립성 공방의 씨앗이 뿌려진 첫 사건이었다.
이후 FCC는 아예 망중립성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채택된 ‘오픈인터넷 규칙’이었다. 이 규칙에서 FCC는 ISP들에게 차별금지, 차단금지 등의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자 버라이즌을 비롯한 통신사들이 곧바로 FCC를 제소했다. 권한을 넘어선 행위를 했다는 게 당시 소송의 골자였다.
■ 항소법원, 2014년 FCC의 인터넷 규제 권한 인정
2014년 1월에 나온 연방항소법원 판결문은 이후 계속된 망중립성 공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FCC의 권한에 대한 중요한 판례였기 때문이다.
당시 버라이즌은 소송을 통해 크게 두 가지 판결을 요구했다.
첫째. 차별금지, 차단금지, 망투명성 공개 등 FCC의 망중립성 원칙은 위법이다.
둘째, FCC는 인터넷 기반 서비스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
2014년 1월 판결 당시 많은 언론들은 FCC가 패소한 부분만 집중 조명했다. 연방항소법원이 망투명성 공개를 제외한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원칙 자체를 위법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두 번째 제소 이유 관련 판결이다. 항소법원은 통신법 706조가 FCC에 규제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FCC의 관할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항소법원은 통신법 706조가 FCC에겐 ‘안전규정(fail-safe)’으로 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fail safe란 “기계가 고장나서 폭주할 우려가 있을 경우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기구”를 의미한다. 마땅한 다른 규정이 없을 경우 FCC가 규제 근거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항소법원은 FCC가 ‘오픈인터넷규칙’을 통해 정보서비스사업자인 ISP들에게 망중립성 의무를 부여한 것은 권한을 넘어선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망중립성 원칙이 아니라 FCC의 권한 행사를 문제 삼았던 셈이다.
톰 휠러가 이끌던 FCC가 지난 2015년 유무선 ISP를 유선전화사업자가 포함돼 있는 타이틀2로 재분류한 건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항소법원으로부터 인터넷 규제 관할권을 인정받은 FCC가 ISP들을 자신들의 관할권 내에 두기 위해 산업 재분류란 칼을 꺼내든 것이다.
FCC가 2015년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한 직후 통신사들이 곧바로 제소를 했다. 하지만 연방항소법원은 2016년 6월 FCC의 산업 재분류가 정당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정당한 권한 행사일 뿐 아니라 관련 절차도 잘 지켰다는 것이 연방항소법원의 판단이었다.
■ 팀 우 "FCC, 정책변화 정당성 부족-여론 역행" 비판
이런 배경을 깔고 이번 사건을 다시 보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FCC가 12월 14일 전체회의에서 ’인터넷 자유 회복’ 문건을 최종 확정할 경우 인터넷 사업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 역시 곧바로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소송은 연방항소법원에서 진행된다. 그럴 경우 FCC로선 2014년 연방항소법원 판결 취지를 뒤집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당시 이미 법원은 FCC가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팀 우 역시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이런 부분을 잘 지적했다.
팀 우는 “FCC가 정책을 급격하게(drastic) 바꿨지만, 그런 변화를 지원해 줄 증거는 취약하다”면서 “이번 결정은 법원에서 뒤집힐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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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FCC가 망중립성 유지를 원하는 여론에 반하는 결정을 밀고 나간 점 역시 취약 요인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미국인 76%가 폐지에 반대하는 망중립성 원칙을 없애려 한다는 것이다.
팀 우는 이런 논리를 토대로 “FCC의 민주적 다수의 잘못된 쪽에 서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