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어떤 인재를 키워야할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범용인재 vs 전문적 인재

데스크 칼럼입력 :2017/04/03 16:38    수정: 2017/04/03 17: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은 엄청난 기억력을 자랑했다. 글보단 말이 지식 전달의 기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엔 암기 능력이 지식의 중요한 척도였다.

인류의 자산으로 꼽히는 ‘일리어드’와 ‘오디세이’ 같은 대서사시 역시 글이 아니라 말로 전승됐다. 그러다보니 긴 서사시를 외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묶음 단위로 암기하기 위한 다양한 관용구들이 등장했다. ‘진부한 상투어’란 의미를 담은 영어 단어 cliche는 이런 관행 때문에 탄생한 말이다.

대화를 통한 교육을 강조했던 소크라테스 역시 암기능력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그래서 그는 그 무렵 막 보급되기 시작한 문자를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암기 능력이 퇴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은 소크라테스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책이 등장하면서 암기의 부담을 덜게 된 인간은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덩달아 지식의 척도가 ‘암기능력’에서 이해력, 사고력 같은 것들로 바뀌었다.

3월 29일 지디넷코리아 주최로 열린 제4차산업혁명 미래 모델 컨퍼런스에서 헤닝 카거만 회장 등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꽤 많이 들린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주도하는 시대의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선 어떤 교육이 적합할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과연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떤 인재들을 길러내야 할까? 4차산업혁명 시대의 전문가는 어떤 소양을 갖춰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선 결코 외면해선 안되는 질문이다.

■ 영어 단어 외우는 능력 vs 영어 활용하는 능력

지디넷코리아와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이 공동 주최한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본 한국형 4차산업혁명 미래모델’ 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다녀간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 회장은 이 질문에 대해 통찰력 있는 답을 내놨다.

카거만 회장은 컨퍼런스 이전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미래 사회는 범용 근로자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뜻 듣기엔 다소 애매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상당히 일리 있는 진단이다.

물론 카거만의 이 발언은 기술이란 또 다른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스마트 팩토리 시대가 되면 기계나 설비, 도구들도 함께 스마트해지게 된다. 그 뿐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지원(digital assistant)’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특정 분야에 집중된 전문가들의 강점이 상당 부분 상쇄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신 다양한 교양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물인터넷과 CP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팩토리 사례. (사진=인더스트리 4.0 보고서)

이렇게 비유해보면 어떨까? 1980년대 초까지 영어 시험엔 단어와 억양 문제가 꽤 많이 출제됐다. 왜 그랬을까? 당시엔 시청각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시대였다. 단어 많이 외우는 게 영어 실력의 밑거름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기억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던 아테네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옛날엔 길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었다. 종이 지도 한 장 펴놓고 길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지도를 읽는 능력 자체가 크게 필요 없는 세상이 됐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지원이란 바로 이런 걸 의미한다.

그래서 4차산업혁명 시대엔 ‘폭 좁은 전문지식’에 집착하는 사람은 전문가 노릇하기 힘들 가능성이 많다. 그런 지식은 똑똑해진 각종 도구를 통해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돌이 모자라서 청동기 시대가 된 건 아니다

요즘 들어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인문학 바람’이 살짝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미래형 인재의 근본이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에 있다는 건 크게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인문학은 문과적 소양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원래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대한 기본 소양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4차산업혁명 미래 모델’ 컨퍼런스 기조 발제를 한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흥미로운 비유를 했다. “돌이 모자라서 청동기 시대가 온 게 아니다”는 내용이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자원이 아니라, 발전하는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시대 변화를 읽어낼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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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범용형 인재란 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본 교양’과 ‘사고력’이란 범용 능력을 충실히 다진 바탕 위에 다양한 전문 지식이란 ‘앱’을 추가해넣을 경우엔 빠른 속도로 변화 발전하는 4차산업혁명 물결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카거만 회장과 국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4차산업혁명 시대의 전문가상이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