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서 계속)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 이하 아카텍) 회장은 일찍부터 "스마트팩토리는 스마트폰처럼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잘 아는 것처럼 스마트폰에선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앱을 다운받으면 성능을 확장할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도 그런 방식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란 얘기였다.
카거만 회장은 오는 29일 지디넷코리아와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본 한국형 4차산업혁명 모델'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할 예정이다. (☞ 행사 페이지 바로 가기)
그는 행사에 앞서 지난 24일 지디넷코리아와 전화로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카거만 회장은 인더스트리 4.0 추진 배경과 성공 비결, 향후 전망까지 명쾌하게 설명했다.
특히 카거만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디지털 지원'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근로자도 범용형 인재가 더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편에 이어서 카거만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을 계속 싣는다. (☞ 카거만 회장 단독 인터뷰 상편 바로 가기)
- 인더스트리 4.0에서 중요한 개념이 스마트 팩토리다. 스마트 팩토리는 단순 자동화 차원을 넘어 맞춤형 생산부터 제품 생애주기 관리까지 다양한 기능이 포괄된 개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형 스마트 팩토리의 강점에 대해 설명해달라.
“스마트팩토리는 인더스트리4.0 제안한 때 처음 제안했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다. 독일 스마트팩토리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우선 제품 자체가 스마트해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제품 자체가 어떻게 조립돼서 생산되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생산과 공정, 물류 전반에 걸쳐서 일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제품이 스스로 생산 공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통 과정의 분권화가 가능해진다.
두번째 특징은 제품 뿐 아니라 기계 설비와 도구, 공구도 스마트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특정 공정이 가동되면 차후에 어떤 공정이 일어날지에 대해 설비들도 알게 된다.
세번째 특징은 작업자들도 항상 디지털 지원(digital assistant)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스마트팩토리의 특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디지털 도구 도움받아 필요한 정보 바로 활용하게 될 것"
- 스마트 팩토리는 자연스럽게 ‘가상물리시스템(CPS)’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CPS는 스마트폰 제품과 머신들을 조합해서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 개념으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쉽게 얘기해서 (가상공간에) 현실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클라우드 상에 (현실 제품과 똑 같은) 디지털 쌍둥이를 올려놓으면 다양한 객체를 조립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체 사슬로 확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품 디자인부터 설계, 설비, 배송까지 디지털로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도 프로토토타입 과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CPS를 강조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디지털 처리가 물리적 연결보다 훨씬 빨라서 조합하거나 연결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설비, 사람이 디지털 (기술의) 지원을 좀 더 받고 역량을 더 강화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개념을 디지털 쉐도우(digital shadow)라고 하는 데, 미리 예측하기 때문에 더 유연한 생산 체계가 가능하다. 또 개인별 맞춤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다.”
- 카거만 회장께선 다른 인터뷰에서 “공장은 스마트폰과 비슷한 형국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얘길 상당히 인상적으로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결국 범용 공장으로 발전해 용도를 넓힌다는 의미인가?
“스마트폰 발전과정을 보면, 하드웨어는 그대로 있지만 앱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기계 설비 역시 앱을 추가해서 역량을 확대하고 범용설비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레이저 기반 설비류들이 그렇게 발전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근로자도 바뀔 것이다. 과거처럼 특정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범용 근로자가 될 것이다. 스마트 글래스 같은 디지털 도구의 도움을 받아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상세한 정보를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근로자, 즉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서 모든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범용 근로자가 미래형 근로자나 전문가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개념을 더 확장해서보면 범용 공장(universal factory)가 된다. 새로운 요구가 있으면 앱을 다운로드하면 공장 자체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변화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변화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 때 대기업+중소기업 컨소시엄 유도"
- 인더스트리 4.0은 중소기업을 빼놓고는 얘기하기 힘들 것 같다. SAP, 보쉬, 지멘스 같은 대기업과 작지만 강한 독일 중소기업들의 효율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이 핵심 경쟁 포인트 중 하나라고 들었다. 플랫폼 방식의 의사소통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궁금하다.
“인더스트리4.0 플랫폼의 목표중 하나는 중소-중션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쉽게 접근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툴셋(tool set) 개발이다. 이를테면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는 레퍼런스 팩토리나 교육센터 같은 것들을 중소, 중견기업들을 위해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정책 면에선 독일 정부는 항상 같은 노선을 유지해왔다. 독일 정부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할 때는 늘 대기업과 중소, 중견기업들이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운영하도록 했다.
인더스트리4.0은 여기서 범위를 좀 더 넓히게 된다. 과거에 전혀 협력할 것 같지 않던 업체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줬다. (이런 정책 덕분에) 새로운 협력을 가속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그렇다면 독일 중소기업은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 또 독일 중소기업 육성 정책의 핵심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히든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정부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진 않다. 오히려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독일 산업계 자체의 문화 때문이었을 것 같다. 독일은 거대 다국적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중소중견기업들을 초기부터 경쟁력있는 파트너로 참여시킨다. 또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술역량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에 함께 나가려고 한다. 이런 문화 덕분에 (중소 중견기업들이) 경쟁력 있게 성장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적인 기반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인위적인 노력도 적지 않았다. 특히 2013년 인더스트리 4.0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던 아카텍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아카텍은 인더스트리 4.0 보고서를 제출한 지 2년 뒤인 2015년에 스마트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보고서를 독일 총리에게 제출했다.
카거만 회장은 중소기업 정책 관련 설명을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스마트 서비스에서 주로 집중한 부분은 미래 비즈니스들은 서비스를 좀 더 유연하게 활용해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소 중견기업,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기술은 갖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운 여건을 적지 않다. 이들이 새로운 세계시장에 좀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을 하자는 게 두 번째 보고서였다.”
■ 디지털 주권, 보안과도 밀접한 관련
- 인더스트리 4.0의 궁극적인 목표가 디지털 주권확보라고 들었다. 디지털 주권이란 표현이 상당히 가슴 깊이 다가왔다. 인더스트리4.0 추진 과정에서 왜 디지털 주권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주권은 처음부터 우리가 제안한 개념은 아니었다. 여러 제안 중 하나 정도였다. 독일 정부도 디지털 주권에 깊이 공감하고 받아들였다. 실제로 디지털 주권에 대한 연구 개발 투자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아카텍도 그 과정에 함께 했다. 다른 나라들은 디지털 주권 확보 문제를 어떻게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디지털 주권은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우선 공급업체, 즉 생산자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리더로서 입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주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연구하게 됐다.
두 번째는 소비자로서 디지털 주권 확보도 중요한 문제다. 어떤 제품을 구입하고, 구매하기까지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모든 걸 독일에서 다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생산됐는지, 제품은 어떤지 충분히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주권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주권 문제는 데이터 보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결된 세상일수록 지적재산 보호 문제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디지털 주권 확보란 아젠다 속엔 업계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부터 인더스트리 4.0 제안을 할 때 40명의 업계 및 과학 기술자 관계자들과 논의를 했다. 그때 참석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지적재산의 디지털 보호가 가능하냐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공정이나 설계 지식이 이전에는 머릿속에만 있었다면, 지금 시대에는 디지털로 모두 호환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만큼 이 정보들이 그대로 흘러 들어갈 경우 자신들의 제품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걱정거리였다. 이들의 고민에 집중해 디지털 주권의 연구 초반부터 디지털 데이터 보안과 보호 작업에 관심을 두고 진행했다.”
오랜 기간 SAP를 이끌었던 카거만 회장은 “실제로 SAP에서 내놓은 SAP 인텔리전스 네트워크가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해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스트리 4.0은 워킹그룹이 설정했던 목표의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가? 독일 인더스트리 4.0은 언제쯤 완성될까? 또 인더스트리 4.0이 완성되기 위해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
“기본 작업은 거의 마무리됐다. 그 동안 아카텍은 인더스트4.0, 스마트 서비스, 자율생산 등 세 가지 과제를 연구했다. 총리에게 보고서 세 가지를 다 넘겼기 때문에 연구 측면에선 마무리 됐다고 본다.
아카텍 제안에 맞춰 독일 정부는 2015년 인더스트리 4.0 플랫폼을 구성하면서 이젠 업계 전문가들에게 넘겼다. 인더스트리4.0 플랫폼은 장관 2명이 리더 역할을 하며 SAP, 지멘스, 도이치텔레콤 등 독일 유수의 기업, 노조, 과학 커뮤니티들이 참가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정부가 관심을 보인 프로젝트이고 총리가 진두 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빗이나 하노버 박람회 같은 전시회를 보면 실행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처음엔 개념으로 잡은 것들이 현실화되는 데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3~5년이면 충분히 완성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 같은 듯 다른 한국과 독일, 두 나라의 차이는?
카거만 회장과의 인터뷰는 정확하게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인더스트리 4.0의 주요 의제들은 대부분 다룰 수 있었다.
물론 국내 독자들이 더 궁금하고 관심을 가질 부분은 ‘독일 얘기’가 아닐 것이다. ‘독일 얘기 중 한국이 참고할만한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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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에선 그 얘기는 깊이 있게 나누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보다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는 29일 지디넷코리아와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 공동 주최로 열리는 컨러런스 라운드테이블에선 어차피 그 문제를 놓고 토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카거만 회장이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주영섭 중소기업청장과 함께 할 라운드 테이블에선 이런 거대 담론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 행사 페이지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