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산 스마트폰 게임 '에어 펭귄'이 출시 4일 만에 미국 애플 앱스토어 유료 게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간 국산 게임이 무료 부문 상위권에 오른 적은 있지만, 유료 부문 전체, 어드벤처·아케이드 등 장르까지 석권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 게임은 6명으로 구성된 국내 소규모 개발사가 만들었다.
국산 스마트폰 게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슬라이스 잇'도 출시 7개월 만에 해외 오픈마켓(애플·구글) 누적 다운로드 1천만건을 돌파했다. 전 세계 유명 게임들과 겨루는 글로벌 오픈마켓에서 받아든 순수 국산 창작 게임의 자랑스러운 성적표들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내 아쉬움과 씁쓸함이 밀려든다. 하루에도 수십통 쏟아져 들어오는 보도자료 중 모바일 게임사들의 소식 대부분이 '해외에서 잘나간다'거나 '게임을 해외에 출시했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해외에 출시한 게임을 국내 독자에게 알리는 일이 더러 쑥쓰럽고 무안하다.
도대체 왜, 국내 소비자들은 우리가 만든 재밌고 즐거운 게임을 이용할 수 없을까?
현재 애플 앱스토어가 있는 100여국 중 단 5개국만 게임이 유통되는 공식 카테고리가 없다. 이중 하나가 IT강국으로 불리길 원하는 대한민국이다.
애플이 게임 카테고리를 허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전심사를 통해 게임물에 등급을 매기는 국내법이 우리가 따지기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비싼 돈 주고 하드웨어를 구입한 소비자들만 콘텐츠 사각지대에 놓였다. 참다 못한 이용자들은 편법을 동원해 미국, 홍콩 등의 계정을 만들어 게임을 내려받고 있는 상황이다.
몇몇 주요회사를 제외하곤 1인 또는 소규모 인원의 영세한 업체들이 대부분인 업계도 딱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글로벌 스탠다드도 못따라가는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 '글로벌 안목'인데, 이를 키우자니 좁은 내수시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국회가 지난달 오픈마켓 사전심의 예외 조항을 골자로 한 게임법 개정안을 부랴부랴 처리하긴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을대로 늦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관련법이 국회서 죽은 듯 잠자고 있던 사이 스마트폰 가입자는 이미 1천만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사전심의가 채 풀리기도 전에 더 무서운 사후규제가 거론되고 있다. 학부모단체 및 정치권 일각에선 특정시간대 청소년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를 모바일게임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소년의 시간대별 차단, 결제 정보 제공 등을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 기능 탑재와 서버 구축 등에 드는 비용은 영세 모바일게임 업체들에게는 감당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국내 시장만 꽁꽁 얼어붙게 될 판이다. 게임 개발사 대표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앱스토어에서 발생하는 매출만으로 회사 45명 가족이 함께 지내고 있다"며 "본사나 운영 서버를 해외로 옮겨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지 말아달라"고 절규했다.
더 큰 문제는 산업에 멍에를 지우는 일이다. '게임=유해물'이라는 인식이 박히면 끝이다. 공공연한 유해물 수출국에서 제 2의 '에어펭귄' '슬라이스잇'은 태동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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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셧다운제는 1년 6개월 후 다시 논하자'는 탁상공론식 대책을 내논 행정 관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나라 대표 문화경쟁력인 게임산업의 발전을 일군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온 수만 업계 종사자가 멍드는 것이 당연한가. 유예된 시간 동안 '잠재적 유해물'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숨죽이며 지내란 말인가.
게임 중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셧다운제는 진단에 대한 너무나 손쉬운 처방이다. 병리적 현상을 둘러싼 환경 먼저 살피지 않고, 무조건 차단하고 금지하는 힘의 논리는 이제라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