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상풍력 산업 새 국면...'보급' 아닌 '공급망' 차원 접근해야

[기경학회 기후&에너지 칼럼] 발전단지와 공급망 함께 설계하고 함께 관리해야

전문가 칼럼입력 :2026/10/31 09:51

이병석 중앙해양중공업 대표

대한민국 해상풍력 산업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회는 계획입지와 정부 주도 입지 발굴 체계를 포함한 새로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발맞춰 정부 역시 계획입지 제도 도입,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 중심 체계에서 장기계약시장 중심 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 10.5GW, 2035년 25GW 규모의 해상풍력 보급 목표도 제시했다.

특별법 제정과 계획입지 도입, 장기계약시장 중심 체계 전환, 보급 목표 제시까지 해상풍력 산업을 둘러싼 제도적 기반은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이제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생산·설치 역량과 현재 국내 공급망 역량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2030년 이후 연간 4GW 수준의 설비 생산 및 설치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15MW급 터빈 기준으로 환산하면 매년 약 267기의 해상풍력 터빈을 생산·운송·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블레이드와 타워, 하부구조물을 생산할 제조시설과 전용 항만, 그리고 대형 설치선박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한 공급망은 필요할 때 즉시 확보할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다. 대형 하부구조물 제작야드는 구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WTIV와 같은 설치선박 역시 발주 후 인도까지 수년 이상 장기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전용 항만 확충과 설치선박 확보 계획을 별도로 발표한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산업과 철강산업, 기계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상풍력 공급망으로 확장할 수 있는 상당한 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해상풍력 전용 공급망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 문제는 산업 역량 부재가 아니라 공급망 구축 자체가 해상풍력 보급과 동등한 수준의 정책 목표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병석 중앙해양중공업 대표

해상풍력 보급 확대가 반드시 자국 공급망 구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해상풍력 보급에 성공했지만 상당수 공급망은 여전히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발전단지 보급과 공급망 구축은 서로 다른 과제다. 보급은 시장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지만, 공급망은 의도적으로 육성하지 않으면 남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누적 설치 규모 확대와 함께 터빈, 하부구조물, 설치선박, 운영·유지보수 체계까지 아우르는 공급망 구축에 성공했다. 중국은 단순히 보급 목표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영 개발사와 제조기업, 조선소, 항만 인프라가 장기간 물량 계획 아래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해상풍력 보급뿐 아니라 공급망 구축 역시 별도의 정책 목표로 관리한 것이다. 그 결과 발전단지 조성을 넘어 공급망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역량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업자 선정과 공급망 조달 체계가 개별 프로젝트의 경제성만으로 작동한다면 이미 건조돼 있는 해외 선박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는 설치선박의 투자도, 건조도, 운영 경험 축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설치선박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해상풍력 공급망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다.

사업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은 저절로 남지 않는다. 결국 공급망 부족은 단순히 시장 규모나 사업 불확실성, 산업 역량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해상풍력 보급 과정에서 공급망 구축 자체를 정책 목표로 설정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그 관점에서 최근 집적화단지 사업과 RPS 개편 논의는 공급망과 산업기여도, 에너지 안보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확산단지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 공급망 평가를 도입하며 이러한 변화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을 평가하는 것만으로 공급망이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발전사업자가 사업권을 획득한 이후에도 공급망을 변경할 수 있다면 공급망 기업은 사업의 일부가 아닌 단순 협력업체에 머물게 된다.

해상풍력 관련 공급망 가치는 기자재나 선박 몇 척이 국내에 남는 데 있지 않다. 예를 들어 해상풍력 전용 설치선과 운반선, 케이블 포설선, 운영지원선이 국내에서 건조되면 남는 것은 선박 자체가 아니다. 그 선박을 구상하고 설계하며 건조·운영·유지보수하는 전 과정의 역량이 함께 축적된다. 설계사와 기자재 업체, 조선소와 선사, 금융기관과 운영 전문인력까지 수많은 주체가 연결되며 하나의 가치사슬이 형성된다. 결국 해상풍력 공급망은 개별 설비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 역량의 문제다.

따라서 공급망 계획을 변경한다는 것은 단순한 구매처 변경이 아니다. 국내에 남을 수 있었던 기술과 경험, 인력과 산업 생태계를 포기하는 결정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해상풍력 조달체계는 발전사업 계획과 공급망 계획을 함께 평가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발전사업자는 발전용량뿐 아니라 터빈·타워·하부구조물·케이블 등 핵심 기자재와 설치·유지보수 선박을 포함한 공급망 계획을 함께 제출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행이다. 공급망 계획은 사업계획서 참고자료가 아니라 사업권 핵심 조건으로 뤄져야  공급망을 포함한 조건으로 사업권을 부여했다면 사업자는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발전용량과 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사업자가 책임을 지듯, 공급망 계획 역시 같은 수준의 책임 아래 관리되어야 한다. 공급망 계획을 중대하게 변경하거나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사업자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 에너지 안보는 석유와 LNG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시대의 에너지 안보는 다르다. 터빈을 누가 만들고, 하부구조물을 누가 생산하며, 설치와 유지보수를 위한 선박을 누가 건조하고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상풍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해상풍력을 단순한 전력 공급 수단으로 볼 것인가,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을 함께 실현하는 국가 전략으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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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려는 최근 발표된 해상풍력 경쟁입찰 공고에서도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정부는 공급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하반기 경쟁입찰 물량 배분을 보면 여전히 보급 확대가 우선순위다. 고정식 해상풍력 물량 1.7GW 중 공공주도형은 300MW에 그쳤고, 1.4GW는 일반 경쟁 트랙으로 배정됐다.

공급망을 보급의 부산물이 아닌 국가 목표로 받아들이고, 발전단지와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고 함께 관리하는 순간 대한민국 해상풍력 공급망 구축은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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