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의 시간이 춤이 될 때

[문화엔진: 본질을 읽는 시선] 전장으로 만나는 종묘제례악의 격조

전문가 칼럼입력 :2026/09/07 10:20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문화엔진’은 문화정책과 콘텐츠산업, 도시공간과 예술 현장의 흐름을 깊고 넓게 통찰하기 위해 마련된 시리즈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 문화가 나아가는 방향과 그 속에 담긴 다층적인 의미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디렉터 이창근과 현대미술가 최지원, 도시경관 계획가 박상희, 미디어공학자 정지윤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필진이 각자의 전문 영역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지디넷코리아 문화산업팀 기자들과 협업해 연재를 이어갑니다. ‘문화엔진’이 K-컬처를 미래산업의 엔진이자 동시대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춤은 어디에 남을까. 건축은 자리에 남고 그림과 유물은 형태로 남는다. 춤은 누군가 다시 몸을 움직여야 이어진다. 발을 딛는 자리와 팔을 드는 높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과 음악을 기다리는 호흡까지 몸에서 몸으로 건너가야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의 일무(佾舞)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사람의 몸으로 이어온 춤이다.

오는 9월 12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전장 ‘팔풍의 몸짓, 일무’ 열한 번째 연작이 열린다. 사단법인 아악일무보존회가 주최하는 대표공연으로 현재 예매가 진행 중이다. 공연 자료에 따르면 종묘대제와 공개행사에서 일무 전장을 온전히 접할 기회가 제한적인 만큼, 일무의 원형과 전장을 온전히 전승·공연하는 데 연작의 뜻을 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64인의 팔일무로 보태평·정대업 일무 전장을 암보해 선보였고 올해 열한 번째 연작으로 그 흐름을 이어간다.

종묘제례악 일무는 무용수가 줄과 열을 이루며 음악과 제례의 질서를 춤으로 드러낸다. 사진은 ‘팔풍의 몸짓, 일무’ 공연 장면.

절제에서 드러나는 격조

종묘제례악이라고 하면 먼저 장중한 음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음악만으로 예악의 전체를 만날 수는 없다. 기악 연주와 선왕의 공덕을 노래하는 악장, 줄과 열을 이루어 추는 일무가 함께 움직인다. 보태평의 일무는 선왕의 문덕을, 정대업의 일무는 무공을 기린다. 귀로 듣는 음악의 뜻을 몸이 공간 위에 펼쳐 보이는 셈이다.

일무의 매력은 큰 동작보다 절제에서 드러난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기량을 앞세우기보다 여러 몸이 방향과 간격을 맞추며 전체의 형식을 만든다. 팔을 드는 각도와 발을 놓는 위치, 움직임과 멈춤 사이의 호흡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 몸을 과장해 드러내지 않아도 줄과 열이 만든 공간은 넓다. 종묘제례악 일무의 격조는 이 절제된 질서에서 나온다.

몸의 배열에도 오래된 세계관이 배어 있다. 종묘제례에서는 상월대의 등가가 하늘을, 하월대의 헌가가 땅을 상징하고 그 사이에서 일무원이 춤춘다.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의 질서 안에서 만나는 천지인의 생각이다. 팔일무의 줄과 열 역시 보기 좋은 군무 대형으로만 읽을 수 없다. 몸의 위치와 방향에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던 방식이 담겨 있다.

빠른 장면전환과 강한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에게 일무의 호흡은 낯설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볼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움직임보다 몸과 몸 사이의 거리, 움직일 때보다 멈춘 순간, 개별 동작보다 여러 몸이 함께 이루는 질서에 시선을 두면 춤의 다른 표정이 보인다.

그것이 일무를 보는 첫 번째 방법이다.

전장을 기억하는 몸

이번 공연명에서 눈여겨볼 단어는 ‘전장’이다. 종묘제례악의 보태평과 정대업은 각각 11곡으로 이어지고 곡에 따라 일무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실제 종묘대제나 공개행사에서는 그 전체 흐름을 한 자리에서 온전히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전장을 익힌다는 것은 많은 동작을 차례대로 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부분과 부분이 어떤 관계를 맺고 하나의 예악을 이루는지를 몸 안에 담아두는 일이다.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 동작이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문무와 무무가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도 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전승의 완결성’을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이어온 유산이라 해도 자주 쓰이는 일부만 남고 전체의 맥락이 희미해지면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것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전장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의 형식을 그대로 얼려두겠다는 뜻과 다르다. 이후의 해석과 창작이 출발할 수 있도록 전체의 구조를 잃지 않는 일에 가깝다.

종묘제례악 일무 전승교육사 김영숙 보존회 이사장은 원로들에게 전장을 모두 외워 발표하라는 과제를 받고 1988년 전장을 암보해 발표했다. 이후 이수자들이 전장을 익혀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이어왔다. 그가 전장을 외워 전하지 않으면 맥이 끊길 수 있다고 강조했던 배경에는 무형유산 전승의 현실이 놓여 있다.

악보와 의궤가 음악과 절차를 기록했다면 일무는 제례의 질서를 몸으로 기억해왔다. 영상으로 동작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도 옆 사람과 맞추는 간격과 음악을 기다리는 호흡, 몸에 들어가는 힘과 절제까지 저절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결국 사람이 익히고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

무형유산에서 몸은 살아 있는 기록이다.

그래서 활용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원래의 구조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눈에 띄는 장면만 떼어내면 전통은 쉽게 이미지와 소재로 소비된다. 반대로 원형의 보존만 강조해 사람과 만나는 접점을 닫아버리면 전승의 폭은 좁아진다. 온전히 이어가는 힘과 더 많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함께 필요하다.

의례에서 무대로, 전승에서 경험으로

이번에는 일무가 종묘에서 국립국악원 예악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종묘에서 일무는 정전과 월대, 신위와 제상, 음악과 악장, 제관의 움직임과 함께 존재하는 제례의 한 부분이다. 공연장에서는 관객의 시선이 춤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줄과 열의 조형, 문무와 무무의 차이, 움직임과 멈춤이 만드는 리듬을 집중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공연장이 종묘라는 장소의 시간과 제례의 모든 맥락을 옮겨올 수는 없다. 대신 의례 안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던 몸의 언어가 무대의 중심으로 나온다. 종묘에서는 예악 전체 속에서 일무를 만나고, 공연장에서는 일무를 통해 예악의 구조를 되짚어보게 된다. 같은 춤이라도 장소가 달라지면 그것을 읽는 시선도 달라진다.

필자는 몇 해 전 종묘 악공청에서 미얀마의 K-팝 그룹이 김영숙 이사장과 이미주 예술감독을 비롯한 일무 전승자들의 지도로 직접 일무를 배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설명을 듣던 이들이 팔을 들고 발을 옮기기 시작하자 오래된 춤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졌다. 멀리서 바라보던 문화가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순간, 유산은 지식에서 경험으로 바뀌었다.

이 장면은 무형유산을 오늘의 사람과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했다. 꼭 화려한 기술이나 거대한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잘 보이게 할 것인지, 어떤 맥락을 이해하게 할 것인지, 어디까지 직접 경험하게 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설계하는 것이 먼저다.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전장 ‘팔풍의 몸짓, 일무’ 열한 번째 연작 포스터. 공연은 9월 12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전통예술의 활용도 같은 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장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설과 기록, 몸의 움직임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교육, 한 번의 공연이 다음 공연과 연구로 이어지는 아카이브가 함께 쌓여야 한다. 한 차례 공연의 성과만으로 전승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떤 형식이 온전히 이어졌는지, 관객은 무엇을 새롭게 이해했는지, 공연 이후 무엇이 기록되고 다시 쓰일 수 있는 자산으로 남았는지도 봐야 한다. 보존과 활용을 따로 놓기보다 전승의 완결성과 경험의 접근성을 함께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12일 예악당에서 ‘팔풍의 몸짓, 일무’를 만난다면 화려한 장면부터 찾지 않아도 좋겠다. 몸과 몸 사이의 간격, 팔과 발이 향하는 방향, 음악과 함께 흐르는 움직임과 멈춤을 천천히 따라가 볼 일이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이루는 질서 속에서 종묘제례악의 춤이 오래 지켜온 예악의 격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창근 헤리티지랩 소장 · 예술경영학박사(Ph.D. in Arts Management)

춤은 순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누군가 다시 몸으로 익히면 그 시간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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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기억하고, 제대로 경험하게 하는 것. 종묘제례악 일무의 다음 시간은 그 두 가지가 만나는 곳에서 이어진다.

글 = 이창근 예술-기술 칼럼니스트, 인문 논픽션 『도시와 유산을 읽는 법』 시리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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