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15.89%를 확보하며 2대 주주에 올라선 가운데, 양사가 우주 관련 사업에서 경쟁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핵심 사업정보 보호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가 향후 KAI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경우 입찰전략과 원가, 기술개발 계획 등 경쟁에 민감한 정보에 어느 범위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KAI 노조는 2일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한화의 KAI 기업결합 승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승인 결정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한화그룹의 KAI 지분 15.89% 취득을 승인했다. 공정위는 현재 지분구조만으로 한화가 KAI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해 경쟁제한성을 따지는 일반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한화가 이미 KAI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한 만큼 향후 추가 지분 취득이나 주요 의사결정 참여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공급망과 우주사업에서 이해상충 문제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노조 역시 공정위 판단과 별개로 실제 경영참여 과정에서 경쟁정보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엔진·항전장비 공급하면서 우주사업선 경쟁
한화와 KAI의 관계는 항공사업과 우주사업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띤다.
항공사업에서는 한화가 KAI의 주요 공급업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KAI가 생산하는 T-50, KF-21, 소형무장헬기(LAH) 등 주요 항공기 사업에 엔진과 항공전자장비, 각종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KAI 입장에서는 한화 계열사가 핵심 공급망의 한 축인 셈이다.
반면 우주사업에서는 양사가 경쟁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KAI 노조에 따르면 KAI와 한화시스템은 초소형위성체계 SAR 검증위성 사업에 각각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후속사업에서도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공급업체와 고객사의 관계에 더해 특정 사업에서는 직접 경쟁하는 복합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화가 향후 KAI 경영에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이해상충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특히 KAI가 엔진과 항전장비 등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가격과 성능, 기술력을 기준으로 공급업체를 독립적으로 선정할 수 있는지, 한화 계열사와 경쟁하는 다른 방산업체와 협력업체에도 동등한 사업기회가 보장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KAI 노조는 한화가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한화 계열 제품과 기술이 우선 채택되거나 다른 업체들의 사업기회가 제한될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찰 전략·원가까지…경쟁정보 접근 우려
더 민감한 부분은 우주사업 경쟁정보다. 우주사업 수주전에서는 경쟁업체 입찰가격과 원가 구조, 기술개발 방향, 컨소시엄 구성 등이 사업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한화가 KAI의 주요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할 경우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KAI 노조는 구체적으로 KAI의 입찰전략과 사업원가, 목표가격, 기술개발 전략, 협력업체 및 컨소시엄 구성, 연구개발 투자계획, 신규사업 참여전략 등을 경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보로 지목했다. 한화가 KAI 경영에 참여할 경우 이런 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이번 지분 취득 단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본격적인 경쟁제한성 심사 대상으로 다루지 않았다. 현재 한화의 지분율과 지배관계를 고려했을 때 KAI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는 한화가 이미 경영참여 의사를 공식화한 만큼 현재 지분율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 번 경쟁정보에 접근하거나 경쟁구조가 훼손될 경우 사후 심사만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노조는 "이번 승인이 한화의 KAI 경영참여와 향후 경영권 확대에 대한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며 "향후 한화가 임원 선임 등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에 나설 경우 공급망 독립성, 경쟁사업의 공정성, 핵심정보 보호, 국내 방산 생태계에 미칠 영향까지 포함한 엄격한 기업결합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진입 땐 ‘정보 방화벽’이 관건
향후 변수는 한화의 KAI 이사회 참여 여부다. 한화가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한 만큼 앞으로 어떤 방식과 범위로 KAI 의사결정에 참여할지가 관심사다.
실제 이사회에 진입할 경우에는 경쟁사업 관련 정보를 어디까지 공유할지, 한화 측 이사가 이해상충이 있는 안건의 의사결정에서 제외될지 등을 포함한 이른바 '정보 방화벽' 구축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공정위 역시 한화의 영향력이 커지는 경우 추가적인 기업결합 심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향후 한화가 KAI의 최다출자자가 되거나 KAI 임원의 3분의 1 이상을 겸임하는 경우, 또는 대표이사를 겸임하는 경우 다시 기업결합 신고·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결국 이번 공정위 승인으로 한화의 KAI 지분 취득은 일단락됐지만 실제 경영참여의 범위와 방식에 따라 이해상충 논란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항공사업에서는 공급업체, 우주사업 일부 영역에서는 경쟁업체라는 양사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면 향후 KAI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경쟁정보를 보호할 장치를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한화그룹은 노조가 제기한 개별 쟁점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보다는 KAI와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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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측은 "한화는 그동안 K-방산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우주항공산업 생태계 조성 등을 위해 KAI와 협력 방안을 강구하면서 KAI 지분을 인수해왔다"며 "대한민국 우주항공산업 발전,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극 기여하기 위해 앞으로도 변함없이 KAI와 지속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