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은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2018년 한국 패션·뷰티 기업 난다를 100% 인수하며 메이크업 브랜드 3CE를 품은 데 이어, 2024년 말에는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를 보유한 고운세상코스메틱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로레알은 3CE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브랜드를 확보하면서 한국 뷰티 생태계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K-뷰티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한국 기술과 스타트업 생태계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업과 디지털 눈썹 프린팅 기기와 피부 분석 디바이스를 공동 개발하고,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국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제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찾고 경험하는 방식까지 한국에서 실험하고 있다.
조이스 뤼 로레알 북아시아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지디넷코리아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을 로레알 그룹의 ‘전략적 혁신 엔진’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생명공학과 제형 과학, AI 기술을 두루 갖춘 데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소비자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소비자들의 빠르고 정교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새로운 AI 기반 뷰티 경험을 시험하고 고도화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AI와 대화하며 화장품 찾는다…궁극적 경쟁력은 데이터”
뤼 CDO는 AI가 현재 로레알의 소비자 경험부터 연구혁신(R&I), 오퍼레이션, 임직원의 업무 방식까지 광범위하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이미 로레알의 모든 조직과 브랜드, 전문 업무 영역과 각 마켓 전반에 도입돼 있다”며 “AI 여정의 다음 장을 주도하기 위해 AI 기반 소비자 여정과 전문 직무, 임직원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은 변화는 제품을 찾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포털이나 이커머스에서 검색어를 입력하고 제품을 비교했다면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가 확산되면서 자연어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탐색하는 방식이 중요해지고 있다.
로레알이 오픈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이 같은 ‘AI 네이티브 커머스’를 확대하고 있는 이유다. 뤼 CDO는 “소비자들이 챗GPT 환경 내에서 직접 메이크업 룩을 탐색하고 실시간 가상 시착(VTO)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협업은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가속화하기 위한 연구혁신 영역과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마케팅 영역까지 깊게 확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뤼 CDO는 “이러한 시대에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궁극적인 경쟁력은 바로 데이터에 있다”며 “AI를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는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킨, 헤어, 두피, 피부 톤 등 모든 뷰티 카테고리에 걸쳐 소비자를 한층 깊이 이해하고 최적화된 맞춤형 서비스와 경험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레알은 생성형 AI 시대에 맞춰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존 검색엔진최적화(SEO)가 검색 결과에서 브랜드와 제품의 노출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GEO는 생성형 AI가 이용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제품을 추천할 때 정확한 브랜드·제품 정보를 활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뤼 CDO는 “GEO를 활용해 정교한 제품 추천과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 접점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커머스 파트너사들과 제품 지식 베이스를 공동 구축하고 AI로 소비자의 검색 경험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로레알의 전략적 혁신 엔진…AI 뷰티 실험한다”
로레알이 AI와 뷰티테크 분야에서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는 한국이다. 뤼 CDO는 한국을 로레알 그룹의 ‘전략적 혁신 엔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뷰티 생태계는 생명공학, 제형 과학, 최첨단 AI 기술이 융합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한국 소비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드에 민감하고 정교한 얼리어답터로서 신속하고 수준 높은 피드백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회사와 국내 기업과의 기술 협력도 이어지고 있다. 로레알은 프링커코리아와 디지털 눈썹 프린팅 디바이스 ‘3D 슈브로우(3D shu)’를 개발해 CES 2023에서 선보였으며, 나노엔텍과는 ‘랑콤 셀 바이오프린트’를 공동 개발해 CES 2025에서 공개했다.
랑콤 셀 바이오프린트는 랩온어칩(Lab-on-a-chip) 기술을 활용해 약 5분 만에 피부의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고 잠재적인 노화 고민을 예측하며 특정 활성 성분에 대한 피부 반응성을 분석하는 기기다.
로레알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진행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로레알 빅뱅’을 통해 국내 뷰티테크 스타트업도 발굴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프로그램에 디지털 트랙을 신설했다.
올해 선정된 스타트업과는 로레알 브랜드와 제품의 GEO 역량을 강화하고 AI를 활용한 향수 특화 솔루션 등을 준비하고 있다.
뤼 CDO는 “한국의 압도적인 디지털 리터러시와 역동적인 소비자 생태계는 소비자와 함께 새로운 AI 기반 뷰티 경험을 테스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혁신 허브”라며 “소비자가 자신의 스킨케어 루틴에 적합한 제품을 보다 쉽게 검색하고 찾을 수 있도록 GEO 역량을 강화하고, AI를 통해 향을 직관적으로 체감하고 경험할 수 있는 향수 특화 솔루션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AI는 창의성 가속화 도구…브랜드 스토리는 인간의 영역”
AI 확산이 마케터의 역할을 대체하기보다는 인간의 창의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로레알은 생성형 AI를 인간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창의성 가속화 툴’로 정의하고 자체 생성형 AI 뷰티 콘텐츠 랩 ‘크리에이테크(CreAItech)’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 어도비, 오픈AI 등 글로벌 기술 기업의 AI 모델을 결합해 마케터가 브랜드 정체성에 맞는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뤼 CDO는 “향후 마케팅에서 AI와 인간의 창의성은 대립하기보다는 서로의 강점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해 주는 관계가 될 것”이라며 “크리에이테크를 통해 마케터들이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는 수천 개의 에셋을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브랜드의 정체성과 소비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인간의 미묘한 감정에 공감하며 문화적 울림을 주는 스토리를 기획하는 뷰티 마케팅의 진수는 오직 인간만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며 “AI가 마케터들을 반복적이고 운영적인 업무에서 해방시켜 줌으로써 마케터들은 창작의 한계를 넓히고 소비자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본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짚었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 역시 기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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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 CDO는 “AI가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압도적으로 우수하지만 소비자의 내면적 욕구를 읽어내고 진정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감성으로만 가능하다”며 “뷰티 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정밀함과 인간 창의성의 감성을 결합하는 ‘양손잡이’ 역량(Dual Muscles)의 균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 인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끝없는 호기심과 전략적 민첩성”이라며 “AI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는 협력적 파트너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