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은 지난해 7월 'AI 액션 플랜'을 발표하며 AI 외교·안보 주도까지 정책 축으로 삼았다. 중국은 'AI+ 이니셔티브'로 맞서고 있다. EU는 AI법으로 위험 수준별 규제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경쟁의 전선이 기술에서 규범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표준을 선점해야 글로벌 시장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
표준은 기술과 규제, 시장을 잇는 산업 인프라다. 과거에는 기술이 성숙한 뒤 표준이 뒤따랐다. 지금은 기술-규제-표준 간 시차가 급격히 짧아졌다. 표준이 먼저 시장의 문법을 정하고, 그 문법에 맞는 기술이 시장에 진입한다. 국제표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술은 아무리 우수해도 해외 시장에서 인증과 규제 장벽에 막힌다. 반대로 표준을 주도한 나라의 기업은 자국 기술을 기준으로 심사받는다.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제조도 예외가 아니다. 스마트공장, 산업 데이터, 로봇 안전, AI 신뢰성까지 AX 전 영역에서 국제표준화가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회의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남이 정한 규칙을 받아 적어야 한다.
금융 분야 사례를 보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지난 4월 100여개 금융사와 함께 230종의 통제 목표를 담은 '금융서비스 AI 리스크관리 프레임워크'를 내놨다. 주요국의 국가표준 제정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제표준 영역은 여전히 공백이다. 국제표준은 각국 규제의 참조 문서로 인용되며 사실상 글로벌 컴플라이언스의 공통 언어가 된다. 이 공백이 한국의 기회다.
필자는 금융서비스 국제표준을 총괄하는 ISO/TC 68 산하 AI 자문그룹의 컨비너로 활동하며 금융 AI 표준에서 해외 금융 전문가와 협업하고 있다. AI로 인한 대표적인 표준화 유망 분야가 에이전틱 AI 결제다. 사용자를 대신해 상품을 검색하고 결제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트 결제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런데 기존 인증 체계는 '사람'의 직접 거래를 전제로 설계됐다.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권한을 재위임하는 에이전트의 신원 확인, 인증, 위임 통제를 다루는 국제표준은 아직 없다.
딥페이크로 은행 얼굴인증을 우회한 사건, 에이전트의 인증 토큰이 탈취돼 대규모 데이터가 유출된 사고는 이미 현실이다. 지금 이 표준을 제안하는 나라가 글로벌 에이전트 결제 시장의 보안 규칙을 쓰게 된다. 필자가 활동 중인 ISO 금융서비스 기술위원회는 '금융서비스 에이전틱 AI 결제'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며 첫발을 떼고 있다.
중요한 것은 표준 제안의 원천이다. 표준은 백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장의 도메인 지식을 국제 규범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표준화다. 한국 제조·금융 현장이 축적해온 운영 노하우, 그리고 기업이 보유한 차별적 현장 데이터의 독점적 가치가 표준 제안 설득력을 만든다. 세계가 아직 규칙을 정하지 못한 영역에서 우리 현장 데이터로 검증된 요구사항을 국제표준 문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K-AX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분야별 산·학·연 단일 대응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개별 기업이 국제표준에 각자 대응하면 정보 격차와 중복 비용만 쌓인다. 단일 창구는 표준 대응을 넘어 업계 공통의 기술 검증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둘째, 국제표준화기구의 의장단 직책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 표준화는 문서 작업이 아니라 사람과 네트워크의 경쟁이다. 컨비너와 프로젝트 리더를 수임하고 유지하는 전문가를 국가 차원에서 키워야 한다. 표준 기반조성은 단기 수익이 나지 않는 인프라 사업인 만큼 정부의 마중물 예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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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기업은 표준 대응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업 내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 신기술 개발 단계부터 표준-특허-비즈니스모델을 함께 설계하는 기업만이 표준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
기술 격차는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정해진 규칙은 오래간다. 규칙을 쓰는 나라가 시장을 얻는다. K-AX의 다음 기초체력은 표준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