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과 29일, 우리 주식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를 겪었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가 하루 8% 넘게 폭락하면 20분간 거래를 강제로 멈추는 비상 장치다. 집으로 치면 누전 차단기다. 2000년부터 26년 동안 딱 여섯 번 내려갔던 이 차단기가, 올해에만 아홉 번 내려갔다. 집 안 어딘가에서 계속 불꽃이 튀고 있다는 뜻이다.
평범한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이 위기의 실체가 더 선명해진다. 직장인 김 씨는 3년 전부터 월급을 아껴 코스닥 바이오 회사와 이차전지 부품 회사 주식을 사 모았다. 회사 실적은 꾸준했고 나쁜 뉴스도 없었다. 그런데 두 종목 다 고점 대비 70% 넘게 빠졌다.
김 씨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회사도 잘못이 없다. 그런데도 계좌는 반의반 토막이 났다. 반대로 이웃 박 씨는 올해 초 유행하는 레버리지 상품에 뛰어들었다. 오르면 두 배로 벌 수 있다는 말에 끌렸지만, 한 달 만에 원금의 절반이 사라졌다. 성실한 장기 투자자와 유행을 따라간 투자자가 모두 큰 손실을 봤다면, 이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운동장 자체가 기울었다는 신호다.
그런데 지금 시장의 진짜 문제는 주가가 떨어진 것 자체가 아니다. 시장이라는 기계가 고장 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느 회사가 세계 최대 제약사와 조 단위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상식적으로 주가는 올라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발표 이후 주가가 40%나 떨어졌다. 동네 맛집이 방송을 탔는데 손님이 오히려 끊긴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살 사람이 시장에 없기 때문이다. 코스닥 하루 거래대금은 한때 20조원대에서 6조원대로, 70%가 사라졌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손님 없는 시장에서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
그 많던 손님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다. 특정 대형주 두 종목의 주가가 오르내리는 폭의 두 배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인데, 여기에 시중 자금이 빨려 들어갔다. 이 상품이 하루에 얼마나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있다.
회전율 179%. 쉽게 말해 그 상품 전체가 하루 만에 주인이 1.5번씩 바뀐다는 뜻이다. 아파트 한 단지 전체가 매일 한 번 반씩 통째로 팔렸다 되사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초 단위 베팅에 가깝다. 온 동네 손님이 이 도박판 하나에 몰리는 사이, 나머지 가게들은 손님이 끊겨 문을 닫을 지경이 된 것이다. 바이오, 이차전지, 로봇, 우주항공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주가가 반의반 토막 났는데, 서로 다른 업종이 똑같이 무너졌다는 사실 자체가 개별 회사 잘못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문제는 대책의 ‘표적’이 어긋났다는 점이다. 대표 대책이 이 상품을 거래하려면 현금 3,000만원을 예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클럽 입장료를 올린 것에 불과하다. 일단 들어간 사람은 안에서 밤새 몇 번을 베팅하든 아무 제한이 없다. 게다가 이 입장료는 개인에게만 적용되고 기관과 외국인은 그냥 통과다. 더 딱한 대책도 있다. 예탁금을 ‘현금으로만’ 내라고 하니, 돈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갖고 있던 중소형주를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가뜩이나 손님이 끊긴 가게들의 물건을 내다 팔게 만든 셈이니, 불을 끄려다 기름을 부은 격이다. “위험하다”는 경고문 부착도 강화했지만, 이 상품이 한 달 새 45% 넘게 폭락하는 동안에도 7조원이 새로 들어왔다. 담뱃갑 경고 그림만으로 흡연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장을 망가뜨리는 진짜 경로는 세 가지다. 이미 판에 들어온 자금이 초 단위로 회전하는 것, 상품 운용사가 매일 장 마감 직전 기계적으로 쏟아내는 대량 매매, 그리고 그 매매를 미리 계산하고 앞질러 움직이는 큰손들의 거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대책은 이 세 경로 중 어느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개인이 새로 들어오는 문’ 하나만 좁혔다. 실제로 대책 발표 이후에도 상품의 회전율은 거의 그대로다. 규제가 약해서 안 통한 게 아니라, 겨눈 곳이 달라서 안 통한 것이다.
그렇다면 표적이 맞는 대책은 무엇인가. 원인이 ‘거래의 속도’라면, 속도를 직접 낮추면 된다.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이 상품의 거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초 단위로 실시간 매매가 체결되지만, 이를 30분에 한 번씩만 주문을 모아 체결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 실시간 경매장을 30분마다 열리는 장터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초 단위로 사고파는 단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반면 몇 달, 몇 년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30분에 한 번 체결되든 1초에 한 번 체결되든 아무 차이가 없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제한속도를 지키는 운전자에게는 아무 부담이 없는 것과 같다. 게다가 한국거래소는 과열된 종목에 이 방식을 이미 쓰고 있다. 새 제도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있는 제도를 여기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둘째, 규제는 상품 하나가 아니라 ‘같은 종목을 따라가는 상품 전체’에 걸어야 한다. 지금 비슷한 상품이 여러 운용사에서 18개나 나와 있다. 한 곳만 막으면 자금은 옆 가게의 똑같은 상품으로 옮겨간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 뿐이다.
그래서 회전율과 거래대금 같은 지표를 상품군 전체로 합산해 주의·경고·위험 3단계 경보를 걸되, 이미 산 사람이 파는 것은 언제든 허용해 출구는 열어둬야 한다. 가둬 놓고 벌주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 몰려드는 과열만 식히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경보를 그 상품에만 걸고 삼성전자 같은 원래 주식에는 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지수 기관들은 경고 딱지가 붙은 주식을 지수에서 빼버리기 때문에, 자칫 우리 대표 기업이 애먼 불이익을 받게 된다.
셋째, 큰손들의 ‘예측 매매’를 감시해야 한다. 이 상품은 구조상 매일 장 마감 직전에 정해진 공식대로 대량 매매를 한다. 매일 오후 3시에 어떤 손님이 뭘 얼마나 살지 미리 공개돼 있는 시장이라면, 약삭빠른 상인은 그 직전에 물건을 사재기해 두었다가 비싸게 넘길 것이다. 실제로 자본과 전산 능력을 갖춘 세력이 이런 구조로 수익을 내고, 그 반대편에서 거래하는 개인이 손실을 떠안는다. 패를 다 보여주고 치는 포커에서 개인만 계속 지고 있는 셈이다. 계좌를 실소유자 기준으로 묶어 주식·선물·옵션을 합산 감시하고, 누가 이 회전율을 만드는지 통계를 공개해야 한다.
지금은 그 데이터조차 없어서, 정책 논의가 짐작에 기대고 있다. 야시장에서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린다면 CCTV부터 다는 것이 순서다.
넷째, 상장폐지 잣대를 잠시 멈춰야 한다. 올해 7월부터 시가총액이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회사를 퇴출하는 강화 기준이 시행됐는데, 하필 시장 전체가 무너지는 한복판이었다. 홍수로 온 동네가 물에 잠겨 집값이 떨어졌는데, 집값 떨어졌다고 철거 명령을 내리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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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장사가 잘되는데도 시장 탓에 주가만 빠진 기업과, 정말 부실한 기업은 구분해야 한다. 시장 탓에 걸린 기준만 6개월 유예하고, 자본잠식이나 회계 부정 같은 회사 자체의 문제는 예정대로 엄격히 퇴출하면 된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다. 상품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속도’만 늦추자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나는지, 어떤 조건이 되면 푸는지를 미리 공표해 규칙대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김 씨가 산 회사들은 손님이 돌아온 시장에서 다시 제값을 평가받을 기회를 얻고, 억울한 퇴출 걱정도 덜게 된다. 박 씨 같은 투자자는 초 단위 도박판이 아니라 차분한 장터에서 거래하게 되고, 패를 미리 읽던 큰손들의 먹잇감이 되는 일도 줄어든다. 과속이 문제라면 과속을 잡아야 한다. 입장료만 올려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