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우리 주식시장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큰 불안을 느꼈다.
주식시장은 원래 위험을 감수하는 공간이다. 주가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가 오르고, 실적이 나빠지면 주가가 떨어진다. 그것이 시장의 원리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위험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기능의 문제다. 시장이라는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 났는데 운전자에게 운전을 더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주가 하락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진짜 문제는 코스닥 시장의 붕괴다.
코스닥은 단순한 주식시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자라는 곳이다. 바이오와 인공지능, 반도체와 로봇, 우주항공과 양자기술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곳이다. 미국의 나스닥이 애플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워 냈듯이 코스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워 내는 토양이다.
문제는 지금 그 토양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 김 씨는 3년 동안 월급을 아껴 바이오 기업과 이차전지 기업의 주식을 사 모았다. 그는 단기 매매를 하지 않았다. 회사를 분석했고, 재무제표를 읽었으며, 연구개발 자료를 찾아봤다. 한국의 미래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기업의 연구개발은 계속됐고, 공장도 돌아가고 있었으며, 수출도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주가는 고점 대비 70% 넘게 하락했다.
김 씨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나도 투기를 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중소기업 대표 박씨의 이야기는 더 절박하다.
그는 직원 120명과 함께 의료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10년 동안 연구에 매달렸고, 수백억 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했다. 그는 은행 대출 대신 주식시장을 선택했다.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 전체가 흔들리면서 회사의 시가총액은 반 토막이 났다. 연구원들은 불안해했고, 신규 채용 계획은 중단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투자를 보류했고, 거래처들은 회사의 재무 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기술은 그대로인데 시장의 평가만 무너진 것이다.
직원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
한 연구원은 스톡옵션을 받아 집을 장만할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회사를 대기업 대신 선택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회사를 함께 성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가가 폭락하면서 스톡옵션은 종잇조각이 될 위기에 놓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연구하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래가 아니라 내일이 걱정됩니다."
투자자와 기업인, 연구원과 직원 모두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손님이 사라진 것이다.
전통시장에 손님이 몰려야 물건값이 제값을 받듯이 주식시장에도 자금이 흘러야 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은 자금이 일부 상품에만 집중되고 있다. 초단기 매매와 레버리지 상품이 시장의 중심이 되면서 장기 투자 자금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바이오와 인공지능, 로봇과 우주항공처럼 서로 전혀 다른 업종의 주가가 동시에 급락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개별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책의 방향이었다.
대표적인 대책은 일정 규모의 예탁금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놀이공원의 입장료를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입장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대로 두고 입구만 좁힌 것이다.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났다.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중소형 주식을 대거 매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을 끄려고 물을 뿌렸는데 옆집까지 함께 물에 잠기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상장폐지 기준의 강화다.
원칙적으로 보면 상장폐지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회계 부정을 저지르거나 경영 능력을 상실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그래야 시장의 신뢰가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홍수가 나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는데 집값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시가총액 기준만 적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까지 함께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코스닥 시장은 거대한 숲과 같다.
삼성전자와 같은 큰 나무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작은 나무 역시 중요하다. 큰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
오늘의 작은 바이오 기업이 내일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인공지능 기업이 미래의 엔비디아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 미래의 ASML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바로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은 오랜 기간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투자를 유치한다.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보다 기술력과 특허, 연구개발 능력과 시장 지배력을 함께 평가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기술 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공장을 짓는 대신 연구원을 채용하고, 기계를 사들이는 대신 특허를 확보한다.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의 가능성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하기보다 당장의 숫자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첫째, 시장 전체가 급격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시가총액 기준 적용을 일정 기간 유예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연구개발 투자 규모와 특허 보유 현황, 매출 증가율과 고용 창출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셋째, 회계 부정과 자본잠식,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넷째, 인공지능과 바이오, 반도체와 로봇 산업과 같은 국가 전략 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일시적인 시장 충격 때문에 우량 기업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안정화 장치를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투기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혁신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시장은 살아 있는 생태계와 같다. 나무를 키우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나무를 베어 내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코스닥 시장은 단순한 주식시장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기업이 무너지고,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무너진다. 그리고 일자리가 무너지면 결국 국가의 미래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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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이 문제라면 과속을 잡아야 한다. 자동차를 없애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담장이 아니다. 혁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다. 코스닥을 살리는 일은 몇몇 기업을 살리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리는 일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