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구글과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네트워크 무임승차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단순한 일방 논리의 여론전으로 변질됐다.
표심을 고려하는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일부 여론을 고려해 당 차원의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행태까지 보이며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사법부의 판단마저도 무시되는 상황 속에서 국회의 입법 논의가 특정 기업과 대형 로펌의 여론몰이에 휩쓸리면서 인터넷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내 콘텐츠사업자의 역차별 개선에 대한 고민은 내팽겨쳐진 상황이다.
최근 구글의 대관 담당 임원이 유튜브 한국 블로그에서 참여를 독촉한 한 이익단체의 서명운동의 참여자 수가 24만명을 넘어섰다.
이 서명운동은 망중립성 수호라는 이름으로 망 무임승차 방지 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망 무임승차 논란의 대표적인 사례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법적 다툼이 꼽힌다.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완패한 뒤 이에 불복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주목할 점은 1심 과정에서 법원은 판결문에서 망 중립성과 망 이용대가는 무관하다고 명시했지만, 서명운동에서는 관련 법안 논의가 망 중립성을 위배한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선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망 중립성은 통신사(ISP)가 자사 망에 접속하는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으로 데이터 전송의 유상성 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런 식의 논의로 진행되는 서명운동에 정치권이 하루 아침에 입장을 바꾼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야당의 새 당대표가 취임한 뒤 정기국회 주요 입법 추진 과제로 망 무임승차 방지법을 꼽은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친 것이다.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치권의 몫이지만, 특정 글로벌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다른 의견에 귀를 닫아버린 태도는 향후 지속적인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의 트래픽 처리에 국내 ISP의 네트워크 증설 투자 부담 증가에 대한 의견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또 콘텐츠서비스사업자(CP) 업계를 시장 내 지위에 따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자칫 글로벌 공룡 CP와 국내 중소 CP의 역차별 문제는 도외시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관련 입법 논의가 머뭇거리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관련 입법 움직임이 한국보다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이 관련 법 제정에 활발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뒤늦게 입법 논의를 쫓아갈 경우 국내 상황의 특수성을 살피기보다 해외 법안을 따라가는 데 급급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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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외에도 앞서 전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네트워크 구축에 콘텐츠 사업자의 기여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각국에서 관련 논의가 일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찬반을 가려 정교하게 이뤄져야 할 법안 논의 과정에 국회의원 대상 폭탄 문자에 이어 선동적인 서명운동으로 수준 이하의 논쟁으로 변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