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암호화폐 관련 연설에서 '책임 있는 혁신'을 지원하도록 규제 프레임워크가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준비가 돼 있는지 따져보면, 시장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는 미비하지 않나 생각된다."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인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자산기본법, 중첩된 과제의 해결방안은'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지적했다.
현재 금융회사가 받는 규제와 비교해 가상자산사업자에 적용되는 규제들을 살펴보면 타인을 대리해 업무하는 자가 자신이나 다른 투자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해상충' 문제 방지,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등 측면에서 미비한 부분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규제 보완을 주장하면서 정재욱 변호사는 "가상자산 시장이 불법 도박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시장건전성을 따질 필요가 없고,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도 없다"며 "이를 하나의 금융 시장으로 인정하고자 한다면 추가적으로 규제를 도입할 측면이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겸영 규제 없고 신고 요건 간단…가상자산 거래소 '이해상충' 방지 규정 도입 주장
정 변호사는 먼저 겸영 규제 측면에서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한 금융회사가 여러 금융업을 동시에 영위할 경우 수수료 인상, 불공정 배분, 자기거래 등 이해상충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자본시장법에 따라 제재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도 암호화폐 상장에 따른 대가로 금전을 받는 '상장피', 유동성 공급 명목으로 행하는 시세 조정, 자체 가상자산 발행에 따른 회사 이익 추구 등 이해상충 행위가 나타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겸영 규제가 없어 가상자산 거래소가 자기매매, 체결, 청산 및 결제, 예탁, 상장 등 모든 종류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진입 규제는 은행, 금융투자업자 등 기존 금융기관에 비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정 변호사는 "가상자산 사업자는 신고제로 운영되는데 법인격 요건, 자기자본 요건, 인력 요건, 건전성 요건, 이해상충방지 요건 등이 존재하지 않고 신고 불수리 요건도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원화마켓 사업자에 한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사용 등 간단한 규정만 있다"며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역할과 중요서엥 비해 상대적으로 사업자가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까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양적 팽창을 해오며 대체불가토큰(NFT) 거래, 스테이킹, 디파이 등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 행태를 관리·감독할 기준이 보완돼야 할 시점이라고 봤다.
정 변호사는 "가상자산 사업자가 상장피를 받거나 고객 자산을 임의로 빼돌려 사용해 처벌을 받은 사례도 존재한다"며 "그럼에도 가상자산 상장 여부를 개별 거래소들이 자체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이 비공개이거나,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 사업자들이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자들은 보다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음에도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삼았다.
정 변호사는 "은행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가상자산 거래소에 제공함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에 따른 리스크를 거래소와 함께 부담하지만 겸영 규제 때문에 가상자산 사업을 직접 할 수는 없다는 모순이 나타난다"며 "가상자산 사업자 대상 이해상충 방지 제도를 도입하고, 간접투자 제도를 정비해 점차적으로 은행의 진입을 허용하면 가상자산 관련 ETF 상품이 출시되는 등 시장 조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가상자산'부처·민간 기구 어떻게 만드나…"입법 여부에 따라 예상 소요 기간 갈려"
이날 함께 발제자로 나선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겸 국민의힘 가상자산 특위 위원은 디지털자산 전담 기구 설립에 따른 기대 효과 및 추진안을 제시했다.
황석진 교수는 "가상자산 거래 시장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현재, 벤처들의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 투자자 보호 조치, 입법적 불비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담 부처를 만들어 디지털 자산 산업 선도 국가로서의 비전을 구체화하고 네거티브 규제로 디지털 경제 토양을 배양하며 투자자 유해 환경 해소 및 제도적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가상자산 전담 기구로 '디지털자산위원회(가칭)'를 두고 ▲산업 정책 기본 방향과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 ▲디지털자산 산업 정책 관련 부처별 실행계획 및 주요 정책 추진성과 점검 및 정책 조율 ▲투자자(이용자) 보호 정책 ▲법제 개선 및 역기능 대응 ▲정책 및 현안과제 연구 ▲인재 육성 등의 업무를 수행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전담기구 마련 방안은 두 가지로 제시했다. 단기에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는 대통령령에 의한 조직 구성을 들었다. 이는 3개월 내로 시행 가능하지만, 정책 심의 및 조정 대상 부처가 많아 업무 수행에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법적 근거가 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마련해 조직을 구성할 경우 국회 여야 협의 등 장기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으나, 정책 수행에 따른 업무 효율이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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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자율기구인 '한국디지털자산협회(가칭)'의 경우 정책 당국인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정식 출범할 경우 6개월 내 시행 가능하나, 역량이 업계 간 업무 협조, 업계 대변 등으로 제한된다고 짚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 근거해 출범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2년여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지만, 업계에 대한 자율규제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황 교수는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담기구가 필요하며, 기본법을 제정해 투자자 보호, 포괄적인 규제를 통한 법적,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한다면 산업이 더욱 활성화되고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