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의료데이터 제공 여부를 두고 진행된 간담회가 반대파를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한화생명의 의료데이터 제공과 관련해 이해당사자간 중재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비공개 간담회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반대를 찬성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정황이 나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지디넷코리아는 건보공단이 최근 가입자(시민단체)·공급자·전문가단체 등과의 ‘비공개’ 순회 간담회를 마치고 각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바탕으로 ‘중재안’이 만들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건보공단의 계획대로라면, 해당 문건을 토대로 타당성 논의 및 이해당사자간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 합의문이 제작될 예정이다.
그렇게 일단 합의문이 만들어지면 건보공단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자료제공심의위)는 한화생명의 요청건에 대한 심의를 재개, 의료데이터 제공 여부를 최종 결정 짓게 된다.
그런데 건보공단이 시민단체와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화생명에 의료데이터 제공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김재헌 사무국장은 “당시 간담회에 참여한 단체들 모두 보험사에 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히자, 건보 측에서 ‘(한화생명이) 자료 제공에 요구되는 요건을 충족해 의료데이터를 요청하면 안 줄 수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했다. 이미 한화생명이 요건을 충족해 건보공단에 의료데이터 제공을 요청했음이 알려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시민단체의 입장 변화를 건보공단이 설득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민단체만 합의하면 (한화생명에 의료데이터를) 주겠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다”면서 “건보공단이 보유한 의료데이터의 특수성이 있는 만큼 의견수렴을 하겠다는 것이었지 시민단체를 설득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관련해 비공개 간담회에서 시민단체는 “민간보험사에 의료데이터를 주면 보험사가 건강보험공단과의 경쟁에서 유리해져 장기적으로 건보공단의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히자, 건보공단은 “우리도 이러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건강정보 자료제공 프로세스에 있어 절차적 문제가 없다면 건보공단이 보험사에 대한 의료데이터 제공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면, ‘민감사안’에 대한 고려가 낮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지디넷코리아가 마켓링크에 의뢰해 전국 20대~50대 성인 6천230명을 대상으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식별 가능한 정보를 제외한 개인의료정보의 기업 제공에 대한 인식을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6.9%(4천167명)가 “반대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해당 사안이 건보공단이 보유한 의료데이터의 특수성과 압도적인 국민 반대 여론이 존재하는 ‘민감사안’이라는 점, 의료데이터의 첫 민간 보험사 제공이라는 선례 등에 대한 큰 고려 없이 절차만 충족하면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만약 건보공단이 갖고 있었다면, 공단이 사안을 다분히 가볍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을 여러 추정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간 건보공단이 해당 사안 처리 과정에서 보인 대응 때문이다.
지난해 자료제공심의위가 일차로 6개 보험사들의 자료 제공 요청 미승인 이후 건보공단은 해당 사안에 대해 별도의 여론 수렴을 진행하지 않았다. 올해 초 한화생명이 재요청을 한 이후 자료제공심의위 1차 심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을 때에도 의견수렴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여론이 나빠지고 나서야 건보공단은 의견수렴을 한다며 간담회 계획을 잡았다. 그러자 이를두고 ‘뒷북’이나 ‘시간끌기’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아울러 한화생명 요청건을 둘러싸고 건보공단이 현재 진행 중인 의견수렴 과정이 자료제공심의위에 특정 방향으로 ‘가이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자료제공심의위는 국민건강정보자료 제공에 대해 심의·의결하기 위해 시민단체·의료계·유관공공기관·변호사 등 공단 내·외부 전문가 14인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의사결정기구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건보공단이 이해당사자를 만나서 의견수렴을 하고 있는 것”이며 “심의위에 다양한 인사가 포함된 만큼 건보공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의위를) 이끌 수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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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운동본부 김재헌 사무국장은 “국민들은 건강보험 발전과 자신에게 이롭게 사용되길 바라면서 건보공단에 의료데이터 축적을 허락한 것”이라며 “이를 민간보험사가 보험 상품 개발이나 손해율 감소 등에 이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보공단은 보험사에 의료데이터를 줘도 유출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며 “민간기업 의료데이터 제공 첫 물꼬를 너무 쉽게 터주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