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적 사고에 발목잡힌 디지털자산 산업

디지털경제 핵심인프라 '디지털자산' 어떻게 키울 것인가(중)

컴퓨팅입력 :2021/10/01 10:31    수정: 2021/10/05 17:07

경제 활동의 중심 축이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이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참여자 간 신뢰 확보는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한 필수 요건인 만큼, 디지털 경제에 신뢰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블록체인·디지털자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블록체인·디지털자산 산업은 중요한 전환기를 맞았다. 특금법이 산업 진입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되면 산업 전반이 건전화될 것이란 기대와 아직 태동기에 있는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블록체인·디지털자산 산업을 디지털경제로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균형있는 규제와 육성 방안이 무엇인지 진단하고자 이번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디지털자산은 투기라는 편견깨야 미래산업이 보인다(상)

기득권적 사고에 발목잡힌 디지털자산 산업(중)

디지털자산, 국가 대표 산업으로 키우자(하)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디지털자산 혹은 암호화폐, 그도 아니면 가상자산이라 불리는 유령이. 낡은 한국의 모든 세력이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동맹을 맺은 듯하다.

디지털자산 산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면 안되는 것처럼 취급 받고 있다. 국민 660만명이 투자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일 거래량은 20조원 규모로 코스피를 뛰어넘었는데도 정부는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것을 자산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 중이다.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 법무부까지 모든 관계 부처가 한 목소리다.

정부에게 디지털자산은 국민 수백만이 참여하고 있으니 통제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진 않은 유령 같은 것이다. 그렇게 디지털자산 산업은 명문화된 규제 공백 속에 당국의 엄포에 가까운 말과, 은행 등 전통금융사를 통한 간접적이고 기형적인 제약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디지털자산 산업에 대한 첫 번째 법규제인 '개정 특금법' 시행은 산업계 입장에서 큰 진전이다. 규제법이긴 하지만 사업의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특금법 역시 은행을 통해 디지털자산 사업자를 관리하겠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은행에 힘이 쏠리다 보니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압력'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디지털자산 산업이 은행에 종속되면 안되는 이유

특금법은 금융회사 등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규정한 법이다. 법 개정을 통해 거래소, 지갑 및 보관관리(커스터디) 서비스 등 디지털자산 분야 일부 사업자들도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이들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사업자 신고 의무도 부과했다. 신고 마감일인 지난 25일까지 거래소 29곳, 지갑 및 보관관리 업체 13곳이 신고를 냈다.

개정 특금법은 디지털자산 산업이 제도화되는 첫 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시행 과정에서 잡음도 적지않았다. 원화를 취급하는 사업자의 경우 반드시 은행 실명계좌를 보유하도록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대다수의 거래소가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놓였고, 원화로 디지털자산을 구매할 수 있는 정상 운영 업체가 단 4곳으로 줄어든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디지털자산 산업이 은행업에 종속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실명계좌 발급 여부가 전적으로 은행 판단·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자산 기업의 존패가 은행과 사적계약에 달려 있게 됐다는 점에서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거래소 임원 A씨는 "은행 입장에서는 이 업체와 계약을 맺었을 때 수익이 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할 것이다. 어떤 거래소가 자금세탁방지 준비가 잘 되어 있는데, 매출이 별로 없다면 은행은 별로 이득이 없는 이런 거래소와 계약을 맺을이유가 없다. 은행이 자기 영업에 이득이 되지 않는 거래소는 안 받아주는 것이 불합리하고 자금세탁방지가 목적인 특금법 신고제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거래소 임원 B씨도 "금융 당국은 사적계약이라고 실명계좌 발급과 유지에 관여를 하지 않고 있다. 실명계좌를 받은 업체라 해도 은행이 갑자기 계약연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업체는 갑자기 사업을 접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산업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디지털자산은 대체 금융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산업 분야인데, 향후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는 전통 산업이 신산업을 통제하는 상황도 신-구 플레이어 간 충돌의 요인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전통 금융관료집단인 금융위원회는 금융사의 편에 서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디지털자산 기반 금융서비스 업체 임원 C씨는 "은행과 디지털자산 사업자가 협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다. 잠재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산업에 다른 산업의 평가를 맡긴다는 것이 문제다. 은행이 경쟁업체가 될 수도 있는 디지털자산 업체가 성장하는 것을 좋아할까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두 산업 간 충돌이 생기면 금융 당국은 어느 편을 들어줄까. 제2의 타다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국토부가 운송업체 규제기관이니까 타다를 죽이지 않았나. 디지털자산 기업들은 이미 구조적으로도 은행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더 대항력이 없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은행을 통한 간접적인 규제 문제는 단지 디지털자산 거래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갑, 결제, 예치·대출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 서비스가 영향을 받고있다. 

예컨대 디지털자산 결제 서비스라면, 이용자가 코인을 충전해 결제에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써는 신용카드나 계좌이체로 코인을 구매할 수 없다. 원화로 코인 구매가 가능하려면 은행 실명계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가 디지털자산 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씨는 "거래소가 4개 통과하느냐 10개 통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통과한 거래소도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살아남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다양한 디지털자산 신규 사업자는 더더욱 나오기 힘들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은행에 모든 책임과 권한을 전가하며, 기형적인 규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우리 산업계는 정부가 규제를 하더라도 정식으로 눈에 보이는 규제를 해주길 바란다. 은행을 통해 관리하고자 하면 이 산업에 있는 기업들은 은행의 갑질이 규제가 되어버린다"고 호소했다.

업권법, 규제와 진흥 사이 균형 맞춰야

그나마 다행인 점은 특금법 시행 이후 업권법 제정 논의가 이어져 규제를 정상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업권법은 어떤 산업의 정의, 진입 요건, 이용자 보호 조치 의무, 산업 육성 등을 포함한다. 특금법이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다룬다면, 업권법은 산업 전반의 규칙을 세우는 법이라 할 수 있다.

금융사의 경우 업권법에 따라 인허가를 받고 산업에 진입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행위 규제가 부여된다. 규제 중 하나가 특금법 상 자금세탁방지 의무다.

반면 디지털자산 산업은 업권법이 없기 때문에 특금법 안에 신고제를 넣어 산업 진입을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자산 산업 업권법이 만들어지면, 산업 진입 규제도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김병욱 의원이 지난 5월 18일 국회에서 가상자산업권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현재 김병욱 이용우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업권법을 대표 발의해 놓은 상태다.

업권법에서 다시 인허가를 논의할 때는 실명계좌 확보 등 은행을 통한 간접적인 통제 방식이 포함되면 안된다는 게 디지털자산 업계의 목소리다.

자금세탁방지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 D씨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지침에는 디지털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실명계좌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디지털자산 사업자들이 특금법에 따라 금융기관 등으로 포함 되면서, 이미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객확인제도(KYC), 고객거래확인(KYT), 이상거래탐지(FDS) 등을 실행하고 있다. 2018년 금융위가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확보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처음 내놨을 당시에는 법적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은행을 통한 자금세탁방지가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디지털자산 사업자들도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생겼기 때문에 이제는 실명계좌를 써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명계좌가 디지털자산 사업자 진입규제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정부가 직접 발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C씨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 의무조항으로 넣어야 한다면 정부가 직접 발급여부를 결정하거나 발급 요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권법에는 산업을 위한 합리적인 규제뿐 아니라 미래산업 육성 관점에서 진흥 방안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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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은 새로운 금융 인프라이자, 디지털경제 전반의 핵심 인프라로 평가 받고 있다. 기득권적 시작에서 '나쁜 것'으로 규정해 규제만 하려 할 것이 아니라, 미래산업 관점에서 규제와 진흥이 균형을 맞추며 건전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특금법 이후 많은 업체들이 정부 방침에 따라 질서있는 퇴장을 했다. 이제 정부도 디지털자산 산업계에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