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지금 앱스토어 실적 공개했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놀라운 혁신성 vs 절묘한 시점

데스크 칼럼입력 :2021/06/03 22:49    수정: 2021/06/03 23: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6천430억달러(약 714조6천억원). 작년 한해 전세계 앱스토어 거래 규모다. 149억달러(약 16조5천억원). 한국 앱스토어에서 거래된 규모다.

애플이 2일(현지시간) ‘글로벌 관점에서 본 앱스토어 생태계(A Global Perspective on the Apple App Store Ecosystem)’란 자료를 통해 공개한 내용이다.

일부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애플이 지난 해 앱스토어로 한국에서 16조5천억원 벌었다”고 썼다. 애플이 왜 한국에서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고 분석한 언론도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엔 한 가지 오해가 깔려 있다. 6천430억달러와 149억 달러를 애플의 매출로 간주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 '앱스토어 경제규모'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사진=씨넷)

■ "앱스토어 개발자의 90%가 중소 개발자" 강조 

애플은 왜 앱스토어 생태계 관련 자료를 지금 이 시점에 공개했을까? 그것도 외부 용역까지 써 가면서.

애플은 에픽 게임즈와의 앱스토어 소송을 막 끝냈다. 최종 판결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소송의 쟁점은 앱스토어 시장 독점 여부였다.  

그 뿐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앱스토어 독점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선 인앱결제 때문에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금 앱스토어 매출 자랑할 때가 아니다.

이런 배경을 깔고 ‘글로벌 관점에서 본 앱스토어 생태계' 자료를 봐야 한다. 그러면 자료의 핵심은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엄청난 돈을 번다"는 게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앱스토어 덕분에 중소 개발자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없던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료를 조금만 따라가보면 이런 내용과 만날 수 있다.  

2015년 이후 중소 개발자 수가 40% 늘었다. 이들은 앱스토어 전체 개발자의 90%를 넘는다. 애플은 100만 다운로드 이하. 매출 100만 달러 이하란 두 조건에 모두 해당될 경우 중소 개발자로 분류한다.

애플은 또 중소 개발자 4명 중 한 명은 최근 5년 동안 매년 평균 25%씩 매출이 늘었다고 공개했다. 앱 80% 가량은 여러 나라 앱스토어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평균적인 개발자는 40개국 이상의 이용자들로부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수치가 왜 중요할까? 독점 행위를 규정할 땐 시장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핵심 잣대가 된다. 그걸 전 세계로 확대할 경우 '독점 횡포'란 주홍글씨가 새겨질 가능성이 낮아진다.  

(사진=애플)

앱 비즈니스 덕분에 부자가 된 회사도 많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만 75개 앱 기반 회사들이 상장하거나 인수가 됐다. 이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5천100억 달러에 달한다.

공개된 숫자들엔 '애플은 중소 개발자들의 영원한 친구'란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다.

“지구상에서 앱경제보다 더 혁신적이고, 탄력적이며, 역동적인 시장은 없다. 앱스토어 개발자들이 매일 이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이다. 중소 앱 개발자들의 천국 같은 곳. 그게 애플이 강조하는 앱스토어의 현 주소다.

■ "인앱결제는 중소 개발자에겐 핵심적 서비스" 주장도 

애플이 이날 공개한 자료엔 ‘거래 규모’만 포함돼 있다. 인앱결제를 통해 애플이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 동안 애플은 앱스토어가 독립적 사업이 아니라 통합된 구조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애플 실적 발표 때도 앱스토어 부문만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서비스 매출에 포함시켜놨다. 참고로 지난 해 9월 마감된 2020 회계연도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537억6800만 달러(약 60조원)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앱스토어 매출을 정말 알 수 없는걸까? 웃기는 얘기다. 왜 알 수 없겠는가? 개발자 분포를 꿰고 있고, 오가는 거래 규모를 다 알고 있는 데 유독 ‘인앱결제 수익’만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된다. 알리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대신 애플이 공개한 보고서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인앱결제는 중소기업에겐 핵심적인 서비스다. 각 지역의 세금이나 화폐 교환 같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도 전세계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인앱결제 덕분에) 중국, 프랑스 등 전 세계 모든 곳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워커아웃 창업자인 안드레아스 카넬라가 한 얘기다. 애플이 자료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얘기다. 

■ 참 영리하고 똑똑한 애플 

이쯤 되면 애플이 왜 이 시점에 앱스토어 자료를 공개했는지 알 수 있다. 앱스토어 매출 규모 자랑이나 하려고 그 자료를 공개한 게 아니다. 앱스토어는 중소 개발자들의 천국 같은 곳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에서 진행 중인 에픽과의 소송도 의식했을 것이다. 전 세계 규제 당국이 앱스토어 독점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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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자료를 보면서 “애플 참 영리하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자신들에게 큰 힘이 될 자료를 내놨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건, 어쩌면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