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하는 한전 재생에너지 사업…쟁점은 '전력망 중립'

[이슈진단+] 한전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진출

디지털경제입력 :2021/01/19 13:43    수정: 2021/02/09 13:05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이기 위해 전력공기업이자 전기판매기업인 한국전력공사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가 들고 투자금 회수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기가와트(GW)급 대규모 해상풍력사업 개발에 한국전력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발전업계는 독과점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한전의 민간 영역 침해 가능성, 또 그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하락 우려도 제기했다.

가장 큰 쟁점은 전력망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다. 전력망 인프라를 관리하는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면 민간 계통 연계(전력망 연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전은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망 정보 공개와 금지행위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형풍력발전기. 사진=한국전력공사

한전, 재생에너지 전력 직접 만들어 판다…업계 반발

1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장 진출을 앞두고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단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이다. 동일 사업자에 2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을 제한하는 전기사업법 '제7조 제3항'을 개정하자는 게 골자다.

재생에너지 비중 제고를 위해 한전과 같은 대규모 사업자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장 참여권을 줘야한다는 것인데,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를 돕고 있다. 민간기업이 운영하기 어려운 사업을 중심으로 한전이 사업에 참여하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현행법상 전력공기업인 한전은 각 발전사로부터 구매한 전력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이 허용돼 한전이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겸업할 수 있게 된다. 영농형·염전형 태양광 등 공익적인 형식의 발전사업 참여도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 제고가 중요하단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전기사업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2050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선 전체 전원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여야 한다. 2019년 12월 기준 국내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16.1기가와트(GW)에 불과했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따르면 2034년까지 이를 78.1GW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

한국풍력산업협회

풍력·태양광업계 "공정한 경쟁·상생 기대도 못해"

발전업계는 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업계는 한전이 이미 6개 발전자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장에 진출해있다는 점, 계통 인프라를 관리하는 한전이 발전사업이란 민간 영역에까지 진출하는 것이 전력망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전기사업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한전이 대규모 해상풍력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풍력업계를 중심으로 한 민간사업자들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민간사업자협회인 한국풍력산업협회는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한전이 발전사업에 직접 진입하면 민간 발전기업으로서의 공정한 경쟁과 상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풍력협회는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전력 판매와 송배전망 건설·운영 등 독점 또는 우월한 권한을 보유하고 인허가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한다"며 "이런 한전이 발전사업에 직접 진입할 경우 '선수' 역할을 하는 민간 발전기업으로서 공정한 경쟁과 상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은 전력계통을 보강하고 확충하는 본연의 업무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풍력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은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비와 투자비 회수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을 근거로 자사의 사업 참여 필요성을 확대 해석하고 있다"며 "그러나 한전의 주장과는 달리, 현재 시장 내에선 자금력을 업고 GW급의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 기존 사업자들이 많다. 한전의 역할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업계 한 관계자도 "현재도 계통 연계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이 똑같은 선상에서 사업자로 경쟁하게 되면 피해를 입는 쪽은 민간사업자들일 것"이라며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접속 지연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따르면 2034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78.1GW로 제고해야 한다. 자료=한국전력

한전 "업계 우려 인식…전력망 정보 투명하게 공개할 것"

한전 역시 망 중립성 훼손 우려를 익히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선 우선, 망 정보 공개와 금지행위 관련 규정을 강화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계통접속 신청 시 신청 순으로 업무처리가 될 것이고, 이는 직원이 임의 변경할 수 없다"며 "지역·기간별 접수정보와 접속 여유정보 등은 회사 홈페이지에 이미 투명하게 공개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기사업법상 금지행위 규정이 강화되면서, 송배전사업자는 업무 중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사적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됐다"며 "이를 위반하면 산업부가 관련자를 징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사내 회계와 조직 분할, 자체적인 전력계통망 정보 공개 등 부서 재편성, 사내 규칙 변경 등의 자체 개선 약속도 내걸었다. 발전자회사와 민간사업자의 참여가 어려운 해상풍력, 영농·염전형 태양광 등 대규모 사업을 중심으로 참여하되, 사업규모와 범위를 제한하는 만큼, 민간사업자들의 손해는 없을 것이란 것이다.

사진=한국전력공사

그러면서 한전은 자사의 재생에너지 사업 참여로 ▲국민 편익 증대 ▲민간 생태계 조성 ▲연관산업 견인 ▲수용성 증대 등 크게 네 가지 기대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 절감을 통해 전기료 인상요인을 흡수할 수 있다고 봤다.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하는 등 생태계 확대에도 한전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중심의 연관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해외수출의 돌파구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민간 주도의 사업은 수익성 위주의 개발인 만큼, 지역과의 상생에 한계가 있다"면서 "농어촌 상생 영농형·염전 태양광 등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생형 사업모델을 육성해 주민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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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해선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의무이행과 REC 거래 제한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이 발급받은 REC는 거래를 제한하는 한편, 할당받은 RPS 의무를 이행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겠다는 것. RPS의무 이행비용은 기준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별도로 정산할 방침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진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난 4일 "발전사업자들이 손쉽게 계통 연결을 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투자를 하고 전력망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며 "망 중립성에 대한 사업자들의 우려가 불식되도록 보완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