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수송부문의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경유세 인상안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경유차를 도로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지난 15년간 100:85 수준으로 굳어진 휘발유·경유 상대가격을 OECD 권고 수준인 100:100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또 20년 뒤인 2040년부턴 전기·수소전기차 등 무공해차 판매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또 발전부문에서의 탈(脫)탄소를 앞당기는 방안도 건의했다. 각 주무 부처·기관을 비롯해 국민과 기업의 정책수용성이 과제로 남았다.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미세먼지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발표했다.
경유차 부담 커진다…신차 판매 제한도 검토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첨예한 쟁점대립이 예상되는 8개의 대표과제와 함께 정부 정책을 확대·강화키 위한 21개의 일반과제 등 총 29개 과제로 구성됐다. 관심을 모으는 대표과제의 경우, 비전·전략, 수송, 발전, 기후·대기 등 4대 분야 8개의 과제로 구성됐다.
'지속가능발전'과 '2050년 탄소중립', '녹색경제·사회로의 전환'을 3대 축으로 한 구체적 실천과제들을 제시했다. 미세먼지 문제를 넘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경제구조의 과감한 혁신을 촉구했다는 평가다.
우선, 기후환경회의는 오는 2030년 미세먼지 감축목표를 현행 대기환경기준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잠정목표 3단계 수준인 ㎥당 15마이크로그램(㎍)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5년 단위의 단기 대책도 10~20년의 중장기 대책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경제·사회로의 전환'도 제안했다. 현행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은 '탄소중립사회를 위한 녹색전환기본법(가칭)'으로 개정하고, 기후환경회의·녹색성장위원회·지속가능발전위원회·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의 통폐합도 건의했다.
수송부문의 미세먼지 감축에도 방점을 찍었다. 경유차 수요·운행 억제를 통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수송용 휘발유와 경유 간 상대가격을 2018년 기준 약 100:88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약 100:95 또는 OECD 권고 수준인 100:100으로 단계 조정하자는 제안이다.
세금 부담을 높여 친환경차 전환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휘발유와 경유(디젤), 액화석유가스(LPG)의 현행 가격비중은 100:85:50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의 '수송용 에너지 가격체계·유가보조금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경유 가격을 휘발유의 120% 수준으로 인상할 경우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배출량이 2016년보다 최대 7.4% 감소할 전망이다.
2035년 또는 2040년부터 무공해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또는 무공해차만 국내 신차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로드맵도 구상했다. 더 나아가, '내연기관차 중 대기오염을 현저하게 유발하는 경유차는 우선 국내 신차 판매 제한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상대가격 조정 정책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대국민 홍보 강화, 친환경차 구매지원 확대, 경유차 배출허용기준 강화, 영세 화물차 사업자 지원, 에너지세제 개선, 유가보조금 중장기 개선 검토 등의 보완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보완 대책은 현 시점에선 구체화되지 않았다.
"2040년 이전까지 脫석탄 앞당겨야"…"가능성 검토부터" 지적도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과 더불어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원전과 천연가스를 보완 활용하는 '국가전원믹스 개선 방안'도 제안했다. 석탄발전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으로 규정하고, 배출 규모를 2045년 또는 그 이전까지 '0'으로 감축하자는 것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이를 2040년 이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이는 앞서 환경부가 제안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검토안에도 담긴 내용이다. 205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0%로 낮추고, 그 자리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채우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65~80%로 상향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열린 LEDS 공청회에서도 이같은 의견들이 제기됐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상향과 탈석탄 기조 강화엔 동의한다'면서도,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론이 없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정부는 앞으로 세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목표 이행을 위한 가능성 검토가 우선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
한편, 기후환경회의는 전기요금 체계에 환경·연료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도 확고히 했다. 환경비용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기료에 50%를 반영하자는 것. 중국·일본 등 동북아지역을 '같은 공기를 마시는 호흡공동체'로 인식, '동북아 미세먼지-기후변화 공동대응 협약(가칭)' 체결도 추진하자고도 제안했다. 이를 전담할 국가 통합연구기관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외에도 ▲기후-환경교육 강화 ▲사업장 불법배출 근절 ▲중소사업장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전(全) 생애 맞춤형 지원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표지(라벨링) 도입 ▲승용차 이용억제를 통한 교통량 감소 등 산업·수송·생활·국민건강 분야의 일반과제들을 담았다.
기후환경회의는 이번 중장기 국민정책제안 마련을 위해 지난 1년간 100여 차례에 걸친 분야별 전문위원회·포럼을 거쳐, 500여명으로 구성된 국민정책참여단의 예비·종합토론회를 통해 제안 내용의 뼈대를 구성했다. 이어 산업계·지자체·정부 등 협의체와 자문단의 의견을 수렴한 데 이어, 지난 20일 오후 개최한 본회의에서 제안을 의결·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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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환경회의에 따르면 9월부터 지난달까지 열린 국민정책참여단의 예비·종합토론회에선 토론과 설문을 통해 29개 과제 모두에 대해 참여단 대다수가 필요성에 동의했다. 또 일상생활에서 국민들에게 부담과 불편을 초래하는 수송·발전부문 핵심과제들에 대해서도 높은 동의율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과감한 체질개선 없인 탄소경제라는 성장의 덫에 빠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패러다임의 대전환과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첫걸음에 동참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