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송부문에서의 미세먼지 감축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경유세 인상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인상에 따른 효익이 크지 않단 이유로 기획재정부 등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후 정부 내부에서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일 환경부와 산업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수송부문의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경유세 인상안을 정부에 정식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이날 오후에 예정된 본회의에서 경유세 인상안 등의 내용을 담은 '중장기 국민정책제안'을 최종 심의해 의결한다. 이후 다음주 월요일인 23일, 반기문 위원장이 이를 직접 발표하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안할 것이 유력하다.
'휘발유:경유=100:85' 공식비 깨지나
경유세 인상안은 에너지전환포럼이 국가기후환경회의에 제안한 '수송용 에너지 가격체계·유가보조금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근거한다. 경유세를 휘발유의 120% 수준으로 인상하면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배출량은 2016년보다 최대 7.4% 감소할 것이라는 게 보고서가 내놓은 관측이다. 세금 부담을 높여 친환경차 전환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휘발유와 경유(디젤), 액화석유가스(LPG)의 현행 가격비중은 100:85:50이다. 이는 상대적인 비율로, 지난 2005년 정부가 에너지 세제를 개편하면서 굳어진 것이다. 가령 휘발유 가격이 1천원이면 경유 가격은 850원, LPG 가격은 500원이 되는 셈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비를 100:95, 혹은 100:100 수준으로 인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유류세도 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오른다. 좀 더 급진적인 방안으론 100:110 수준도 거론된다. 다만, 이렇게 하면 징벌적 수단의 과세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정부, "2030년 경유차 '제로'"…기재부는 고심
정부는 노후경유차를 '도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연간 2회씩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6월 환경의날 기념식에서 "수도권 미세먼지 문제는 대부분 경유차를 비롯한 수송분야가 원인"이라며 "경유차를 빠르게 퇴출해 늦어도 2030년까지는 경유차 사용을 제로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퇴출 노력에도 경유차 인구는 계속해 늘어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는 지난 2016년 말 약 920만대에서 올해 말 약 1천만대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수송용 연료 소비에서 경유가 차지한 비율도 휘발유의 두 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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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정부에서도 경유세 인상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9일 환경부가 발표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검토안에도 탄소중립에 맞춰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대폭 상향됐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봄철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정부에 제안해 실제 정책 수립으로도 이끈 전례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발전·산업·건물부문과 함께 핵심 감축 부문인 수송부문에서의 친환경차 대중화도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경유세 인상도 완전히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말했다.
관건은 기재부의 판단에 달렸다. 앞서 기재부는 경유세 인상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미세먼지 감축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경유차 운전자는 물론, 갈수록 늘어가는 환경부담금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정유업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경유세 인상 시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환경개선부담금에 더해, 배출가스 저감장치(DPF) 부착 차량 등 '이중 과세' 논란의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