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재용을 꼭 기소해야 하나

[정진호의 饗宴] 이재용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의결과 의미

데스크 칼럼입력 :2020/06/27 18:34    수정: 2020/06/28 12:21

물산합병 과정에서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기소가 필요하지 않다'며 불기소 및 수사중단 의결을 내린 것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먼저 국민적 눈높이에서 볼 때 검찰의 수사가 1년 8개월 동안 진행됐지만 불법이라고 볼만한 사실관계 입증이 부족하고, 적용할 법리 관계도 명확치 않다는 판단의 권고이겠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승계 프레임'으로 단정한 검찰 수사의 틀이 애당초 합리적이지 못했다는 무언의 비판이기도 하다. 또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공정·평등 같은 여러 가치가 편향된 의혹과 허구로 잘못 실현된다면 기업과 경영인이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상식적인 시민 구성원의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이번 수사심의위에는 우리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전문가 150~250여명의 심의위원단에서 무작위로 추첨해 선정한 15명 중 14명이 참석했다. 주로 교육자·종교·교수·변호사·언론인 등이다. 투표에는 임시위원장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했는데, 10명이 검찰 수사 중단에 찬성하고 2명이 수사 계속을, 1명이 기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사장, 삼성물산 기소 여부에는 10명이 '불기소하라'고 표를 던졌다. 당초 박빙의 접전이 예상됐던 의결수에서 대다수가 삼성 측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특히 이들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폭 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검찰의 논리보다는 억울함이 없게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삼성 측 변호인단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다. 불법 경영이냐, 아니냐의 기준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겠다.

이번 심의위의 표결이 보여주듯이 검찰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은 우리 사회의 집단·조직 이기주주의보다 국익과 대의를 앞에 놓고 행동해야 한다는 쪽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그런 점에서 검찰도 수사의 고삐를 잠시 늦추고 이번 심의위의 의결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4년 가까이 재판(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횡령·배임·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작) 혐의로 또 다시 잡아들인다면 국민들의 눈에는 검찰이 회초리를 든 부모의 심정으로 벌하려는 게 아니라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으로 비춰질 뿐이다. 만약 기소가 된다면 재판에서 혐의 사실이 어떻게 소명되든 이 부회장은 물론 삼성은 경영 정상화는 물론 예전처럼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기 어렵다. 어느 부모도 자식에게 흠이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벌하지는 않는다. 수사심의위 위원들의 이번 의결에는 아마도 그런 심정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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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사명 중 하나가 공명정대한 사회구현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1항의 가치도 지켜야 한다. 죄가 있으면 성역 없이 죄값을 물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그건 범죄혐의가 충분히 소명됐을 때 얘기다. 삼성이 백주대낮에 수 십 만 주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불법적인 기업합병을 했다고 5년이나 지난 뒤에 죄를 묻겠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1년 동안 구속 수감돼 집행유예로 풀려나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구속영장도 세 번 받았다. 이 부회장과 경영진을 기소한다고 예전처럼 박수 칠 국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나 검찰 조직에게도 실익이 없다. 그렇게 믿는 것은 소수일 뿐이다. 수사심의위 의결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반도체 초격차와 인공지능(AI) 투자, 앞으로 벌어질 대규모 글로벌 인수합병(M&A)전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에 나서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낫다. 그것이 삼성이나 이 부회장이 할 일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기업 활동에 전념하고 기술로 사회 공헌과 발전에 헌신하도록 말이다. 삼성이 가려는 가치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꼭 적대적 관계는 아닐 것이다. 검찰이 명예와 자존심을 앞세워 기소를 강행한다고 위상이 바로 서는 게 아니다. 스스로 발등 찍는 꼴이다. 자신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사심의위의 10대3 의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