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팩스로 코로나19 피해 집계하는 일본

전문가 칼럼입력 :2020/05/13 17:18    수정: 2020/05/13 23:42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요즘 일본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되면서 화상음주모임이 대유행이다.

나도 일본 지인들과 주 1~2회 화상음주모임을 하고 있다. 화상음주모임이란 각자 편한 장소에서 화상회의 소프트웨어(SW)로 얼굴을 보면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지난주에도 화상음주모임을 하던 중 참석자 한 명이 나에게 “한국의 코로나19 방역대책은 정말 훌륭하군요. 그런데 염 선생님 보시기에 일본 코로나19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耐える難きを耐え(타에루가타키오타에)、忍び難きを忍び(시노비가타키오시노비)”라는 말로 대신했다.

모두 박장대소했지만 내심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아니 속상하라고 이야기했다는 게 맞겠다.

일본 도쿄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소개한 일본어는 8·15 광복절 즈음이면 한국 TV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타에루가타키오타에, 시노비가타키오시노비’로 시작하는 일본 쇼와일왕의 항복선언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참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끝까지 참고 견뎌서”라는 의미다.

전후 맥락을 보면 일본이 항복하면 점령군으로부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겠지만 잘 견뎌서 후세에 나라를 물려주자는 이야기 일부다.

위 문장을 인용한 이유는 이렇다.

국가지도자가 국가를 엉망으로 이끌어 나라가 망해가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정작 국가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노력은커녕 우왕좌왕하며 나라를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몰고 들어가고 있다.

이 판국에 여러분은 들고일어나 나라를 바로잡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인 것 같으니 코로나19 위기를 참고 견디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의미로 경각심을 줄 목적이었다.

일본국민은 한국국민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로 심신이 피폐해진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정부의 코로나19 대책 추진상황을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코로나19 관련, 전국에 발령한 긴급사태 선언을 31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일본 후생노동성과 한국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5월 10일 0시 기준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정리해봤다.

두 나라 코로나19 관련 통계에서 눈에 띄게 차이 나는 것은 PCR 검사수다.

일본은 한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본 인구가 한국의 2배 이상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6분의 1수준밖에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왜 이토록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일까.

일본정부는 코로나19 검사희망자가 일시에 몰리면 의료기관에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할 것을 우려했다.

또 코로나19 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통제하고자 민간의료기관이나 민간검사전문회사에는 PCR 검사업무를 위탁하지 않고 오로지 후생성 산하 기관만 검사할 수 있도록 했다.

4일 이상 고열이 발생하고 산소결핍으로 호흡곤란이 올 정도의 중증 환자만 검사받을 수 있도록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했다.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검사를 받고 싶어도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병증이 악화할 때까지 자택에서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심지어는 길거리에 쓰러져 사망한 사람을 검사해보니 코로나19 감염자였다는 뉴스도 흔치 않게 접한다.

일본은 확진자 가운데 사망자 비율이 한국의 2.35%보다 높은 3.94%에 이른다.

여기서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조사를 해보았다. 내 추론대로라면 일본 코로나19 확진자는 검사수가 적어서 그렇다고 치지만 실제 확진자 수는 지금의 몇 배를 넘을 것이고, 검사를 받지 못하고 증상이 악화해 사망한 사람은 한국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그런데도 사망자가 한국의 두 배를 조금 넘는 626명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으로 믿기 힘든 현실이지만 이유는 일본 정보화 수준과 일본 정부의 악의적인 통계조작으로 인한 통계치 부정확성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도쿄 인근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보호복을 입은 식당 직원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은 코로나19 대책과 관련해 제대로 된 통계 관련 컴퓨터시스템이 없어서 벌어진 문제라고 한다.

전국 1천700여개 지방자치단체별로 집계한 검사자·확진자·사망자 등 각종 통계성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집계해 후생노동성성에 팩스로 보내면 담당자는 엑셀에 입력해 통계자료를 만든다고 한다.

일본 전자정부 수준의 단면이다.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보고 시점에 따라 혹은, 수작업 집계 오류 등으로 정확한 통계를 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0일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일본 정부는 맹비난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도쿄도는 9일까지 누적 사망자 수가 19명이었는데 10일 171명으로 정정됐다고 한다.

9일 기준 일본 전국에서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누계가 600명이었는데 전국적으로 재조사를 하거나 재집계를 하게 되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보다 사망자 수가 적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망자는 PCR 검사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매년 폐렴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0만명 정도다.

코로나19는 폐렴 증상을 수반하게 돼 사망원인이 코로나19로 의심되면 PCR 검사를 해야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지만, 정부가 해주지 않는다.

일반병사자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가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측이 신빙성을 얻는 이유다.

그런 와중에 아베신조 총리가 4천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천마스크를 조달해 가구당 2장씩 나누어 주겠다며 추진한 속칭 ‘아베노마스크사업’으로 조달한 마스크에 이물질 혼입되거나 오염된 상태로 가정으로 배달돼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베노마스크 조달과정에서 거액의 납품 계약을 수주한 기업이 마스크를 만들어 본 적 없는 거의 페이퍼컴퍼니 수준이라는 등의 석연치 않은 납품업자 선정과정이 드러나 야당과 국민의 추궁을 받는 상황이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마스크를 쓴 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정부는 코로나19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기업은 재택근무를, 쇼핑센터나 유흥업소, 식당 등 자영업 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 등에는 휴업을 요구하고 있다.

휴업 기간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자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할 것 없이 생계유지가 막막한 상황에 몰렸다.

무능과 무책임으로 코로나 확산사태를 초래한 일본정부는 지금까지의 대응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후 추가조치도 없다.

2개월씩이나 기업활동의 전면중지에 가까운 조치를 내려 일본경제는 엄청남 타격을 입고 있다. 필자의 눈에 비치는 아베 정부는 오로지 국민 희생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질타하고 개선을 촉구해야 할 일본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정치가를 감시해야 할 일본 시민사회나 일본국민 역시 침묵할 뿐이다.

침묵뿐 아니라 내일 당장 내각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른다고 할지라도 또다시 자민당이 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보편적이다.

일본국민은 민주국가 시민이라기보다는 봉건국가의 백성(신민)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명언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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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후 75년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국가적 위협을 맞이한 일본국민은 또다시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무능하고 오만하며 독선적인 지도자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아마도 일본의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려면 “참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끝까지 참고 견뎌서”라는 항복선언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