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쿄올림픽 연기로 보는 일본의 정치학

전문가 칼럼입력 :2020/03/26 18:16    수정: 2020/03/26 23:14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일본 정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합의해 도쿄올림픽 개최 시기를 1년 연기했다. 일본 정부 발표대로라면 올림픽은 내년 7월께 개최를 목표로 새로운 일정에 들어간다.

일본 정부는 IOC가 코로나19 감염확산으로 올림픽 개최가 어려워졌다고 보고 도쿄올림픽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결론지을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개최연기가 공식 발표된 직후인 25일 일본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96명 늘어난 것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시기가 절묘하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코로나19 감염진단 자체를 억제해 확진자 수를 통제해 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혹은 올림픽 개최도시 도쿄의 도지사 선거와도 무관하지 않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임기는 올림픽 개최 시점인 7월말이고 도시자 선거는 7월 5일이다.

고이케 도지사는 본인의 재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민당이 도지사후보를 내지 않기로 아베 신조 총리와 합의했고 아베 총리의 의중에 맞춰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숨기고 있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자민당은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고이케 도지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올림픽 개최연기가 공식결정 되고 하룻만에 도쿄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절 늘어났다.

26일에는 고이케 도지사가 도쿄 주변 광역지자체인 사이타마현과 가나나가와현, 이바라키현 거주자들의 도쿄 진입을 자제해 달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단순한 의혹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올림픽 연기로 추가되는 비용이 약 3000억엔(한화 약3조원)엔 정도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학 명예교수가 밝힌 경제손실은 6408억엔(한화 약 6조4천억원) 정도라고 하니 1조엔 가량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론된다.

25일 일본 아이치현 이나자와 시청에서 한 작업자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2021년으로 연기되면서 성화봉송 관련 게시물을 철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를 맡고 있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올림픽 개최시기를 2년 정도 늦추길 원했지만 아베 총리가 1년 연기안을 강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베 총리 임기가 내년 9월까지여서 본인 임기 중에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르고 화려하게 퇴장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본 중의원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아베 총리는 이 시기를 염두에 두고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나는 가을 이후에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 성과를 바탕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른다는 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여당 세력을 좀 더 공고히 하고 야당이 선거채비를 할 수 없게 기습적으로 중의원을 해산해 야당을 약화하려던 것으로 점쳐진다.

정치권에서는 아베 총리가 당내 영향력을 유지한 채 내년 9월말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퇴진하고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는 선양론도 거론되고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소위 올림픽 개최 후 화려한 퇴장은 환상이 돼버린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앞으로 1년간 코로나19 사태 수습과정과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내년 7월 올림픽을 마친 뒤 9월 자민당 총재 임기만료에 맞춰 국회를 해산하고 중의원선거를 실시하는 안도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임기만료 목전이고 레임덕 현상으로 인해 본인이 후계자로 밀고 있는 기시다 정조회장이 총리에 임명되도록 확실하게 지원할 수 없다. 오히려 아베 총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자민당 전국조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총리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목하 고민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25일 일본 도쿄에 설치된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막일 표시기가 남은 날짜를 보여주고 있다.(사진=뉴시스)

헌법 개정에 소극적이고 아베 총리에 각을 세우고 있는 이시바 총리 등장을 저지하기 위해 총리가 ‘코로나 극복 올림픽의 실현’을 내걸고 올 가을에서 내년 초 사이에 중의원을 해산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 기시다 정조회장을 총리로 만들 수 있고 그를 배후에서 컨트롤해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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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개최일정을 연기한 본질은 전 지구적인 위협인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올림픽 참가자를 포함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본질은 도외시하고 벌어지는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인들의 적나라한 권력투쟁 모습을 보고 있자면 씁쓸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일본 코로나19 사태의 귀추가 주목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