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는 5월20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3년’을 12개 분야로 나눠 평가하는 시리즈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업계와 학계의 전문가 41명으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소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 시리즈 기사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더 알차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⑧인터넷역차별, D학점...국내외 기업간 역차별 더 악화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잠시나마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여느 때보다 규제샌드박스(규제 없는 모래 놀이터)를 외치기도 했고, 신사업 분야 등 스타트업 육성에도 강한 의지를 나타냈었기 때문이다. 규제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국내외 인터넷 기업간의 역차별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기업들은 해를 거듭날 수록 점점 더 울상이다. 규제 역차별 해소에 있어 강한 의지를 보였던 정부와 국회는 사라졌다는 평가다. 현 정부는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플랫폼 규제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천편일률적인 모습도 보인다. 국내 기업에만 해당되는 실효성 없는 법안으로 이중 규제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정부의 국내 인터넷 기업과 해외 인터넷 기업간 역차별 문제 해소 관련 전문가들 입에서는 '낙제점'을 주고 싶다는 말도 나왔다. 오히려 없던 규제가 생겨나고 역차별은 더 심해지는 법안들이 속속들이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정부와 국회가 직시했으면 하는 따끔한 충고에서다.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 3년 성적' 이렇게 매겼습니다]
■ 논의의 장 연 정부…이렇다 할 해결은 아직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18년부터 민관협의체인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를 꾸리고, 업계 이해관계자들 및 각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인터넷 업계에서 약자 위치에 있는 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부터는 제2기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가 출범했고, 여기에서도 국내외 인터넷 기업의 공정경쟁과 관련한 애로사항에 대해 논의됐다. 해외사업자 법 집행력 확보를 통한 역차별 해소의 실효성, 망 이용을 둘러싼 공정경쟁 환경 조성 등이다.
지난해에 이어 해외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 대리인제도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국내 대리인제도는 해외사업자가 국내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해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의 업무, 자료 제출 등을 대리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계속해서 국내 대리인과 임시중지명령 등에 대한 추가적인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고, 정보통신망법상 국내 대리인 제도는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이같은 법안이 국내외 인터넷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로 제대로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존재했다.
특히 국내대리인제도 관련해서는 적용 대상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법은 지난해 3월부터 집행됐지만, 아직도 일부 해외 인터넷기업들은 대리인지정을 하지 않고 있고, 개인정보침해사고를 당하거나 개인정보 관련 고충상담이 필요한 이용자에게 국내대리인이 즉각적인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망 이용관계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통신사업자와 인터넷사업자간 망 이용료 갈등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인 가운데, 관련 법안은 계속 발의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인터넷 사업자에게 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 등을 부과하는 것을 담고 있는데,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이같은 법안으로 국내외 사업자 역차별은 더욱 심화될 수 있고, 인터넷 사업자 규제를 강화한다면 성장이 제한돼 결국 생태계 전반이 열악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방통위가 망 이용료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나섰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국내 인터넷 기업만 압박하는 꼴이 됐다는 논란도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기업만 더 불리해졌다는 의견이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사전규제보다는 사휴규제 중심으로, 더 나아가서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해외 기업 해당 안 되는데…국내 플랫폼 규제 커진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규제는 소위 ‘n번방 방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현재 국회에서 우후죽순 발의되고 있는 이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가 불법 성적 촬영물 발견 시 삭제, 전송방지, 중단 등 기술적 조치에 대한 의무를 갖게 되는 내용과 불법 성적 촬영물을 방치하는 온라인사업자도 처벌받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정부 또한 지난달 23일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해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넣었다. 인터넷사업자가 디지털 성범죄물의 삭제나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관련 법안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이는 곧 사업자가 모든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 내역을 다 들여다보고 있으라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면서다. 또한 범죄가 일어나는 온상지인 해외 사업자에게 실질적 규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고, 규제를 받지 않고 있는 해외 인터넷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기업들이 모든 콘텐츠를 디지털 성범죄물인지 확인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미 국내 기업들은 법을 지키고 정화작용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만약 이 규제가 실행되면 국내외 인터넷 기업 역차별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성범죄를 방치하자는 거냐’라는 감정 섞인 대답만 돌아올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땜질 식으로 도입되는 법안들로 지친다”라면서 “국회나 정부가 심사숙고를 한 후, 공론화 과정도 거쳐 실효성이 있는지 제대로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D학점…일부 성과 있지만 갈길 멀다
지난해에 이어 국회의 정부가 국내외 인터넷 기업간 역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는 있지만,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도 공존했다. 오히려 규제를 더 만들지 않는 것이 국내 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터넷 서비스에서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서비스 품질을 판단하고 사업성을 좌우하는 주요한 기준이 될 수 있으니, 21대 국회에서는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관심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인터넷생생발전협의회 등을 운영한 정부가 해외 인터넷 기업과 역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고,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 성과가 있다고 인정한다”며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 보다는 사업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식의 규제가 계속돼온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n번방 방지법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규제와 의무가 실효성이 있는지,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반성이나 검토가 먼저 필요한데 무조건 사업자들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있다”면서 “낙제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대리인지정제도는 아직도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 규제 하향을 계속 요청하고 있지만, 상향 조정이 되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가 심해지면 서비스 이용자들이 텔레그램 등과 같은 해외 서비스로 이전하는 ‘디지털 망명’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구색맞추기 식의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C학점을 줬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정부의 정책이 그동안 인터넷 플랫폼 육성이나 규제완화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규제로 인해 해외 사업자와의 역차별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과 스타트업간의 역차별도 생겼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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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변호사는 “규제가 생기면 준수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기업들이 투자를 받아 규제 준수에 쓰면 안 된다”며 “댓글 모니터링이나 디지털 성범죄물을 감시할 수 있는 기업은 몇 안 되기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를 이기는 후발 주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이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해외 기업만 키워주는 꼴이 된다”며 “규제가 강화되면 인터넷 기업 입장에선 죽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E학점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