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표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가 R&D 성과지표에 표준을 추가하는 방안은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협회표준·국가표준·국제표준 등 다양한 표준 중 어느 표준까지를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8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R&D-표준 연계방안 모색 공청회’에 참석한 이석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표준정책국장은 이같이 말했다.
앞서 국회는 정부 R&D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에 표준을 추가하는 내용의 ‘연구성과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연구성과평가법에 명시된 지표인 논문·특허 외에 새롭게 ‘표준’이라는 단어를 추가, 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심을 환기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연구 성과 평가 지표에 ‘표준’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상용화하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시장을 주도하는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전환하기 위해 표준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법안이 개정된 후, R&D 과제로 개발한 기술이 표준으로 제정돼 활용되는 실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검토와 기준 설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어떤 표준까지 성과로 인정해야 하나
우선 다양한 표준 중 어느 표준을 어떻게 성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지표로 활용되는 논문·특허도 난이도 및 파급력에 따라 세분돼 적용된다. 법안 개정에 앞서 표준에도 이와 유사한 기준이 우선 설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석래 과기정통부 국장은 “수많은 표준 중 어느 수준까지를 법에서 인정하는 성과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표준이 성과를 평가하는 항목에 포함되면 전담기관을 지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신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본부장은 “각 부처별로 표준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며 “표준에 대한 가치를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성과가 나왔을 때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정량·정성평가가 정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과로 인정하는 표준의 기준 설정에 대해서는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개진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표준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만큼, 초기 표준 분야 활성화를 위해 질적 평가보다는 양적 평가에 집중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공청회에 참석한 이정준 LS산전 이사는 “논문에 대한 평가도 초기에는 국내 학술지 등 난이도에 따라 차이를 두지 않았지만, 양이 어느 정도 늘어난 이후 SCI급 논문만 평가한 바 있다”며 “표준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만큼 난이도가 다르겠지만, 초기에는 양적 확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현실적인 표준화 문제, 해결 방안 찾아야
R&D 기간에 비해 표준화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반적인 중장기 R&D 기간은 3년에서 5년 사이이지만, 국제 표준 제정 작업에는 5년 이상이 걸리기 일쑤라는 점을 감안해 별도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신성윤 한국기술평가관리원 단장은 “특허나 논문이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에 비해 표준은 연구 기간을 훌쩍 넘겨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담기관 차원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방안을 도입, 표준화 노력을 판단하거나 필요할 경우 후속 표준화 작업과 연결하는 별도의 트랙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가 직접 표준화에 나서기 어려운 만큼, 표준화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체계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선주 성균관대 교수는 “연구자는 연구 성과를 창출하기 바쁘기 때문에 표준화에 인력을 별도로 투입하기 어렵다”며 “이를 위해 표준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각각 전문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이를 고려해 투명하게 성과를 평가 할 수 있는 체계적인 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표준화 비용 의무화, 오히려 지원 줄어들 수도
연구성과평가법 중 기술 가치를 평가해 비용을 지불하는 조항에까지 ‘표준’을 포함하는 개정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연구성과평가법은 연구성과를 판단해 사업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실시 비용 및 특허 관련 비용을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표준’이 포함될 경우 현재 R&D 예산을 통한 표준화 지원보다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석래 과기정통부 국장은 “이 조항이 개정되면 사업화가 필요하고 그걸 인정받은 표준화에 대해서만 평가하고 비용을 인정해준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기존 지원보다 협소하게 지원될 가능성이 있다”며 “더욱이 법적으로 의무적인 비용 지원이 약속되면 연구자 간 경쟁이 심화되고, 의도치 않은 경쟁이 늘어나면 국가 차원에서도 손해가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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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석래 국장은 우려되는 점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겠다고 강조했다. 표준에 대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법안 개정과 함께 시행령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석래 국장은 “표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성과 평가에 표준이 추가되면서 연구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창의성을 저해하는 것은 법안의 취지와 다르다”며 “연구성과평가법이 개정되면 전 부처 R&D에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부분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