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규제 혁파를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정책을 바탕으로 일명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강력히 추진됐지만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가 개정안에 합의했지만 각 상임위원회에서 심사가 늦어지는 탓이다. 21세기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AI 기술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국회가 외면하는 사이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중국과 미국 등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경쟁력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데이터 활용에 개방적인 일본과 비교를 통해 보수적인 국내 데이터 활용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 등을 상·하 편으로 나눠 모색해고자 한다.[편집자주]
[이슈진단+] 데이터3법 어디로-상 "한국, 아시아 최대 AI 강국 기회 놓쳤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 본회의서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법 개정을 위한 각 위원회 일정 등에 따라 시기가 연기될 전망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21일 열리는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심사 후,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인 12월 10일께쯤 통과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정부와 업계의 의지와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데이터 3법 중 개인 금융이력과 직접적 연관을 맺고 있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개인 정보 보호 조치가 강력해야 하며, 기업들의 영리적 목적에 자신의 개인 정보를 동의없이 활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사회적 실익을 가져오며, 가명 정보도 필요 시 적정성을 따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식별 가능성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비식별 정보의 재식별 우려...빅데이터 활성화 반대 아니지만, 기업 영리 활용 반대"
신용정보법 등 개정안에 반대하는 곳에서는 개정안에서 정한 '가명 처리 정보'는 추가 정보 결합시 식별이 가능하다는 점, 기업의 상업적 목적 이용에도 불구 개인의 추가적 동의가 없다는 부분은 안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추가 정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가명 조치)한 개인신용정보로서 가명정보의 개념을 도입하고, 통계작성(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을 포함), 연구(산업적 연구를 포함),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서는 가명정보를 신용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이용하거나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활동가는 "가명 처리의 경우 추가 정보를 붙이면 재식별이 가능하다. 특히 이종산업 간 데이터 결합도 개정안에 정해져 있는데 결국 결합해 개인 정보를 판매하는 행위가 일어날 것"이라며 "특정 연구가 끝난다하더라도 폐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유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오 활동가는 이어 "빅데이터 활성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정보는 사(私)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것인데, 기업의 영리를 위해 활용되는 것이 맞느냐"면서 "익명 처리라든지 개인 정보 활용 동의를 받고 학술 연구에 이용한다면 사회적 효용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서채완 디지털정보위원회 간사(변호사)는 "신용정보법은 데이터 3법 내에서도 더 상업적 활용을 대놓고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개인 정보는 활용되는지 악용되는지 또 손해가 발생하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없는데 관리감독의 주관 부처가 잘 할 수 있는지 등도 의심쩍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비식별화된 정보를 쓰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국내는 주민등록번호란 체계가 있어 개인 정보 보호가 더욱 강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금융데이터에 비금융데이터 결합하면 씬파일러에 도움"
이 같은 의견에 개정안 통과를 준비한 금융위원회에서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사회적 실익을 가져오며, 가명 정보도 필요 시 적정성을 따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권대영 금융혁신기획단장은 "금융서 데이터라는 것은 평가이자 추천이다. 개인의 금융 거래와 소비 등 경제활동을 하면서 쌓이는 데이터"라며 "금융데이터에 통신과 위치, 결제 등 비금융데이터를 결합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1천107만명(씬 파일러)과 소상공인 600만명이 제대로 평가받고 사회적 전체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단장은 "가명 처리 정보란 추가 정보를 통해 재식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인데, 필요하다면 가명 정보의 적정성도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의 익명 처리 'k적정성'으로 평가하듯 관련 가이드라인을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적정성보다 결국 식별할 수 있는 키 값을 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관리적으로 분리해 보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개인정보 인격권 아닌 '재산권' 인식 논의 이뤄져야
개인 정보 보호를 더 완벽히 해야한다는 논리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데이터 3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무한반복되면서, 데이터에 대한 접근과 인식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개인 정보를 기업이 영리 활동을 위해 사용할 때의 불편감을 해소하고, 빅데이터 산업도 활성화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부연이다.
현재 국내에서 개인 정보 보호는 재산권 보호보다는 인격권 보호 차원에서 세부 법리가 형성돼 있다. 대법원은 개인 정보 침해 사안을 인격권 침해에 따른 불법 행위로 보고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만약 재산권으로 인식됐다면 손해배상이 이뤄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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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바른 나황영 변호사는 "아직까진 개인 정보에 관해 적어도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이 태동할 것이란 예측을 하기 전에 법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 변호사는 "개인 정보 보유자가 자신의 성명과 연락처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쇼핑몰에 할인쿠폰을 받기 위해 넘기는 경우가 있지 않냐"면서 "개인 정보에 재산권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고,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도 이 같은 문제 의식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 변호사는 "개인 정보 보호법과 신용정보법 개정안서 시민단체가 문제로 지적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용자원 역할을 하는 개인 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보상 등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점에 있다"며 "데이터의 근간이 되는 개인 정보가 오히려 바람직하고 투명하게 쓰이기 위해 재산권적 요소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