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Newtro] 정치와 산업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9/11/08 11:25    수정: 2019/11/08 11:26

“보편요금제는 법률로 요금과 음성·데이터 제공량을 국가가 정한다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이와 관계된 부분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보충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며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범위에서만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지난해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놓고 찬반 논쟁이 팽팽할 때 이동통신사 측을 대리한 한 변호사가 했던 말이다. 민간의 통신상품을 정부가 설계해서 이를 법제도로 강제한다고 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법제도가 완성되지 못했다. 직전에 KT가 자발적으로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보편요금제를 내놨다. KT가 내놓자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이 잇따라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했다.

정부가 통신사의 요금을 설계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한 폐해는 컸다. 이미 시장에는 보편요금제보다 가성비가 높은 알뜰폰이 있었지만 보편요금제로 시장이 망가졌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알뜰폰의 가입자 이탈 수준이 1만명 이하였지만 하반기에는 2만명대로 높아졌다. 지난해 11월에는 3만명대까지 치솟았다.

중국 산전에 위치한 화웨이의 사이버시큐리티랩.

결국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는 매각을 결정했고 곧 LG유플러스가 인수할 예정이다.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이 지난 6일 벌어졌다. 미 대사관저에서 열린 리셉션 만찬에 미 정부 관계자들이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화웨이 장비 구입을 하지 말아달라고 직·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화웨이 통신장비의 백도어를 통해 보안유출이 우려돼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한국과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우리 정부와 민간 기업 관계자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의 통신 요금제를 설계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비판받는 현실에서 다른 국가의 정부 관계자가 우리 민간 기업에 어떤 장비를 구매할 지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자리가 한국의 방위비분담금 협상 당사자들이 참석한 고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곳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압박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이동통신업계 임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 같은 일은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동통신업계 한 임원은 “지난 정부에서는 외교라인을 통해 노골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해왔었는데 지금은 민간이 참여하는 만찬 자리를 이용해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화웨이 장비의 보안우려에 대한 주장에 대해 설득력 있는 증거들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유럽을 중심으로 5G에서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고 미국의 최대 우방인 영국에서조차 화웨이 장비를 제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반대로 화웨이는 세계적 정보보안 평가 기관인 E&E(Epoche and Espri)로부터 CC인증을 받고 있고 모든 국가에서 비백도어 협약에 서명하겠다는 의사도 밝히고 있다.

보안에 대한 우려를 차치하고라도 정치와 산업을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 앞서 보편요금제도 선거 공약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초법적 행태를 고집하다가 민관이 부딪힌 일이었고, 미국 정부의 요구도 전 세계 전문가들이 보안이 아닌 정치적 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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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과 몇 달 전 일본이 ‘강제징용’이란 정치적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는 걸 보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정치와 산업을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수없이 해왔다.

정치와 산업을 연결 지을 때 이는 자국 이기주의로 발현되는 보호무역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수출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