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역할은 국가 간 규제 차익을 방지하고, 암호화폐의 음성화를 막는 것이다. FATF의 권고안이 12개월 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업계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고, 실제적인 데이터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로저 윌킨스 전 FATF 의장은 3일 해운대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 거래소 박람회 '댁스포(DAXPO) 2019'에서 FATF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발언했다.
이날 '댁스포 2019'에서는 로저 윌킨스 전 FATF 의장과 신제윤 FATF 전 의장(2015~2016)이 'FATF의 역할과 의무'를 주제로 토의를 진행했다. 토론 사회는 에이미 다빈 킴 디지털 상공 회의소 국제정책 디렉터가 맡았다.
■ "미국이 지지하는 FATF, 달러 패권 때문에 준수할 수밖에 없어"
신 전 의장은 "FATF는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방지를 위한 기관으로, 이와 관련된 활동을 차단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며 "FATF 전체 회의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국의 준수 현황을 평가하는 것이 기본 업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별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못하면 네이밍앤쉐이밍(naming&shaming·공개적인 비행폭로) 등의 페널티가 주어진다"며 "권고사항을 준수하지 못하는 북한과 이란 같은 예외적인 나라의 경우는 금융기관을 통해 지사나 자회사에 규제를 한다"고 덧붙였다.
로저 윌킨스 전 의장은 "FATF는 각 나라가 규제를 실제로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당국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며 "권고사항을 불이행할 경우에는 왜 법규를 준수하지 못했는지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전 의장은 "특히, 미국이 이런 권고사항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각국은 달러의 영향력 때문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FATF 권고안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 금융이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FATF 권고안을 지키지 않는 일부기관에게 달러 거래를 금지시키면 해당 국가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 "FATF 주안점은 규제 차익 방지와 대규모 암시장 방지"
FATF는 지난 6월 암호화폐 취급업체를 관리·감독하는 방안이 담긴 권고안을 발표했다. FATF 회원국에게는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로저 윌킨스 전 의장은 FATF 권고안을 두고 "처음에는 암호화폐와 관련해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환전하거나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것에 대해서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호화폐 전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기술, 프라이버시 문제뿐 아니라 고려해야 할 광범위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가는 것은 멀다고 생각했다"며 "정부·대중의 입장을 보고 그에 맞춰서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 전 의장도 "완벽한 가이드라인이 나오려면 아직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다"며 "신생 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하고, 국가마다 입장 차이도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가 더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저 윌킨스 전 의장은 특히 두 가지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간의 통일이 필요하다"며 "국가 간의 규제 차익을 방지하는 게 FATF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암호화폐를 음성화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암호화폐를 음성화하면 대규모 암시장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에 개방적으로 투명하게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규제 차익을 방지하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과 같은 규제를 도입하기에 역량이 부족한 나라도 많고, 해당 규제를 집행하기 어려운 나라도 많다"며 "제도적인 상황이나 기술적 부분에서 역량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처럼 자신들의 지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치하기 어렵다"며 "국경을 넘나드는 특징을 가진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전 의장도 각국이 새로운 권고 사항을 검토하고 입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가 간 입장 차이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며 "정부 내에서도 새로운 기술, 신산업이 필요하다고 하는 긍정적인 입장도 있고, 법무부나 다른 금융감독기관들의 경우는 불법 자금에 활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려운 분야기 때문에 입법화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블록체인 업계가 정부를 설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저 윌킨스 전 의장은 "권고안이 1년의 유예기간 내에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업계에서 실제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입장을 밝히고, 규제당국과 어떻게 협의해 나갈지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20년까지 FATF 의장국은 중국…"권고안 정치적으로 영향받진 않을 것"
FATF의 현재 의장국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의장직을 수행한다.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중국이 의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FATF에 영향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신 전 의장은 "특정 국가가 의장직을 맡는 게 본회의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로저 윌킨스 전 의장도 "FATF의 결정에 정치 역학이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신 전 의장은 "중국 측과 대화해 본 경험에 따르면 중국은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인 위안화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현재 중국 금융시장에서는 핀테크, 모바일 지급결제 시스템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며 "실제 규제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열린 '댁스포 2019'에는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오갑수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도 참석해 개회사를 했다.
유재수 경제부시장은 "부산은 금융 중심지를 지향하고, 컨텐츠 마켓을 리딩하며,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의 파일럿 도시라는 점에서 블록체인과 큰 인연이 있다"며 "부산은 블록체인과 퍼펙트 매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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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최근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 자유특구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부산 규제자유특구는 부산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변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것"이라며 부산을 BBC(부산 블록체인 시티)로 생각해달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새로 선출된 오갑수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은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자산은 한국 사회에 혁신적인 구조적 변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며 "부산이 한국의 규제자유특구로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플랫폼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