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소장 VOD, 진짜 평생 소장할 수 있을까?

[백기자의 e知톡] “회사 귀책 사유에 따른 명확한 보상정책 없어”

인터넷입력 :2019/03/15 08:31    수정: 2019/03/16 10:13

“영원히 널 지켜줄게.”, “평생 오빠만 믿어.”

여러분은 이 말을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영원히 널 사랑하고, 영원히 지켜주겠다는 말 과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비슷한 애정공세를 영화 주문형비디오(VOD) 플랫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평생소장이 천원”, “보헤미안 랩소디 영구소장 VOD 공개”와 같은 문구로 사용자들의 결제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며칠만 보지 말고, 조금 더 돈을 보태거나 특가로 ‘평생’ 소장하면 더 이득이지 않겠냐는 유혹을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 말을 어디까지 믿으면 될까요?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을 각색한 이미지.

먼저 VOD 사업자들이 사용하는 ‘평생’, ‘영구’의 명확한 뜻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죽기 전까지 소장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유지되는 한 사용자에게 소장 권한을 주겠다는 뜻인지를 따져 봐야겠죠. 결론부터 말하면 사업자들이 말하는 평생과 영구는 “우리 서비스가 살아있는 한”에 가깝습니다. 사용자가 회원을 탈퇴하거나 죽기 전까지 제공하겠다는 뜻이 아닌 셈이죠.

백기자는 최근 국내 IPTV 3사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구글, 티빙, 푹 등 대표 VOD 플랫폼 사업자에게 물었습니다. 회사의 귀책 사유로 사용자가 평생소장으로 구매 한 VOD 영화를 제공할 수 없을 때 관련된 구체적인 보상정책이 있는지를 말이죠.

대부분의 VOD 사업자들은 서비스 종료 시 이를 사전에 이용자에게 알리고, 관련 법령에 따라 소장용 VOD 보상 기준을 만들겠다는 공통된 답변을 했습니다.

대여 방식의 경우는 이미 시청하거나 다운로드가 발생된 콘텐츠에 대해서는 회사 잘못일 경우 남아있는 대여기간을 계산해 나머지 금액을 환불해주는 약관이 대부분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장 구매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회사 사정으로 더 이상 서비스가 어려워질 경우, 마땅한 보상 정책이나 약관이 명시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만약 회사가 문을 닫거나 서비스를 종료하게 될 경우 이를 사전에 이용자에게 알리고,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겠다”면서도 “현재 명확한 정책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설마 우리가 VOD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우리 회사가 망할까요?”라는 의아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외적으로 CJ ENM만이 회사에 책임이 있을 경우 소장용 VOD 콘텐츠를 전액 환불해 준다는 약관을 제시했습니다.

구글이 평생소장이라며 판매하고 있는 영화들.

이런 상황에서 만에 하나 구글이 혹은 KT나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같은 IPTV 사업자들이 영화 VOD 사업을 접기로 결정하면 그 동안 소장용으로 구매했던 영화 콘텐츠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전액 환불이 가능할까요. 명확한 환불, 보상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자들이 이용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영원히 지켜준다면서 돌아섰던 거짓 사랑고백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건 지나친 걱정일까요.

2017년 4월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TV 사용자들은 이사를 가서 불가피하게 타 케이블 사업자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경우 기존 구매했던 V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불만이 켜지면서 쿠폰 지급 형태로 금액을 보장해주는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또 지난해 6월 전까지만 해도 IPTV 3사는 이용자가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타사로 옮길 경우 평생소장으로 구매한 VOD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이용자 피해와 민원이 커지면서 모바일 앱에서 구매한 콘텐츠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뒤늦게 조치했습니다.

사업자들의 이기적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 보이네요.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IPTV 사업자의 유료 VOD수신료 매출은 2013년 약 3천260억원에서 2017년 5천900억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4년 새 80% 이상 성장한 것입니다. 이를 네이버, 카카오, 구글, 푹, 티빙 등으로 넓힐 경우 훨씬 더 큰 규모의 시장이고, 성장세 또한 빠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만큼 특정한 사고나 부정적인 이슈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들의 피해도 클 수 있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보면 평생소장, 영구소장이라고 판매하고 있는 VOD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환불 및 보상정책이 정해지고, 이에 대한 소비자 안내가 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능한 소비자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평생, 영구와 같은 단어도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구소장용 VOD 콘텐츠는 대여용보다 약 2배가량 비싸다.

그렇지만 이를 관리 감독할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 큰 문제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생각조차 못해본 상태로 보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약정심사과 담당자는 “기존 환불정책에 부당한 내용이 있다면 시정 조치를 취하겠지만, 향후 피해를 우려해 없는 약관을 만들라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사업자 귀책 사유로 서비스가 어려워지고 이에 대한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민사소송을 통해 적절한 보상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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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평생, 영구이라는 표현 자체가 표시광고법에 따른 과장 광고에 해당될 수 있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이미 있는 약관이 부당할 경우 시정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에게 불리하거나 피해가 예상될 경우 없는 약관이나 정책을 만들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웃돈을 주고 평생소장용 VOD를 구매할 때, 언젠가 그들이 변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지금 내 옆에서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웃고 있는 연인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