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블록체인 산업 흐름을 좌우한 가장 큰 변수는 암호화폐 가격 변화다. 암호화폐 가격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극과 극을 내달렸다.
급격한 가격 변화는 블록체인 산업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블록체인 경제가 기대감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실생활에 쓰이는 블록체인 서비스가 빨리 나오지 못하면 블록체인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이에 올해 블록체인 산업에선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어떤 것들은 꽤 주목받으며 트렌드로 부상하기도 했다. 가치안정화토큰인 스테이블 코인, 현실세계 자산을 토큰화하는 증권형토큰,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토큰을 판매하는 IEO, 거래에 대한 보상으로 거래소 자체 토큰을 지급하는 '채굴형 거래소' 등이 대표적이다.
■롤러코스터 탄 암호화폐 가격...비트코인 8분의 1토막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암호화폐 시장 이상과열 현상은 1월 정점을 찍었다.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은 2400만원까지 올랐고, 전국에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기대감만으로 만들어진 거품은 두 번의 변곡점을 맞으며 무너졌다. 첫 번째는 1월 중순 나온 정부의 시장과열 진화 발언이다.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시장을 흔들었다.
두 번째는 지난 11월 비트코인캐 하드포크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하락장이다. 하드포크로 시장 불안정성이 높아졌고 이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와 G20에서 규제 강화 분위기가 포착되면서 좀 처럼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연말 블록체인 업계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다.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를 작동하게 하는 '연료'와 같은 암호화폐 가격이 16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300만원 대까지 내려갔다. 연초 최고점을 찍었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8분의 1토막이 난 수준이다.
암호화폐 가격이 높았을 때 암호화폐공개(ICO)를 진행한 업체들은 보유한 코인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기업 운영, 제품 개발, 마케팅활동 등 비즈니스 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CO를 준비해온 기업들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예전같이 않아지면서 어려운 상황이다. 목표한 규모의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는 ICO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실사용 사례 발굴해야"...국내에선 테라와 클레이튼 등 주목
암호화폐 가격하락으로 블록체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산업 전체를 봤을 때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고 시장 침체기에 들어선 올해 중반부터는 "실생활에 쓰이는 블록체인 서비스가 빨리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블록체인 기업들이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 보이지 못하면, 투자도 인재도 썰물처럼 처럼 빠져나가 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배경이 됐다. 블록체인 산업이 침착하게 본질을 고민하고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된 셈이다.
누가 먼저 블록체인으로 성공적인 실사용 사례를 만들어 낼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중엔 스테이블 코인 '테라'와 카카오가 만든 플랫폼 블록체인 '클레이튼'이 주목받고 있다.
테라는 신현성 티몬 의장이 공동 창립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 및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다. 결제 분야에선 이미 티몬, 배달의민족, 야놀자, 큐텐, 캐러셀 등 국내외 인기 이커머스 서비스와 테라 결제 시스템 도입을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사용자 기반이 수천만 명 이상이다. 스테이블 코인 분야에선 클레이튼을 포함해 다양한 플랫폼 블록체인과 결합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클레이튼은 카카오가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개발하고 있는 플랫폼 블록체인이다. 기업들이 실제 블록체인 위에 서비스를 만들 때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위한 성능과 기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 중이다. 향후 카카톡 등 기존 카카오 서비스와 접목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블록체인 대중화 선두에 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ICO 대안으로 IEO, STO 주목
올해 하반기로 갈 수록 ICO에 대한 관심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암호화폐 시장 침체로 ICO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줄었고, ICO를 통해 자금조달이 녹록치 않아졌다.
게다가 ICO 방식은 이미 유사수신이나 다단계를 걸러내기가 어렵다는 한계와 부작용이 드러난 만큼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의 필요성이 제기 됐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IEO다. IEO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토큰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토큰 판매 주체인 거래소가 프로젝트를 한번 필터링하기 때문에 건전한 시장 형성에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향후 IEO가 활성화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형 거래소가 IEO에 참여할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대형 거래소의 경우 IEO를 통해 얻는 판매 수수료 수익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토큰을 판매한 프로젝트가 향후 부실하다고 판명되거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이 거래소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미술품 등 전통적인 자산을 토큰화해 판매하는 증권형토큰공개(STO)도 올해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증권형 토큰의 발행과 유통이 모두 법적으로 가능해, 유동성이 낮은 자산의 토큰화 위주로 시장이 발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법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규제 공백 상태로 1년...끊이지 않은 사건사고
기대했던 ICO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는 결국 없었다.
지난 10월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국정감사에서 "ICO에 대한 정부 입장을 다음달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업계는 11월 중 ICO에 대한 정부 입장 발표가 나올 것으로 크게 기대했다.
하지만, 노형욱 신임 국조실장이 지난 11월 암호화폐 관련 제도 마련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국제동향을 보며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사실상 올해 정부 입장 발표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로써 지난해 9월 'ICO 전면 금지령' 발표 이후 1년 이상 규제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규제 공백은 건전한 블록체인 기업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준수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은 시도 조차 하기 어렵다. 내부 법률검토를 거쳤다해도 자칫 잘못하면 불법으로 몰려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1월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는 내부 법률 검토를 거쳐 '암호화폐 펀드'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놨다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금융당국은 이 사건을 검찰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닉스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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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공백 상태는 투자자 피해를 방치하는 문제도 낳고 있다. 규제 공백을 틈타 오히려 음성적인 다단계, 유사수신 행위가 판을치고 투자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1월엔 '퓨어빗'이라는 거래소 운영진이 채굴형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투자자들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이더리움을 모금해 잠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