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메신저로 SK텔레콤 군단(軍團)을 이긴 건 살라미스 해전이나 명량해전에 비견될 수도 있는 영웅(英雄) 스토리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그러므로 군수(軍需)를 지원해야 할 군주(君主)가 믿지 않을 것이기에 승률은 제로로 수렴하는 쟁투(爭鬪)였습니다. 그 불리한 싸움을, 씨름에서 최절정의 기술인 뒤집기한판으로, 뒤집었으니 어찌 공부하지 않을 수 있나요.
#국민의정부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는 국가 정책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깔아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온갖 생태계를 만들어냈다는 점일 겁니다. 그 덕에 네이버와 엔씨와 지마켓을 비롯해 그 많은 닷컴 기업들이 존재합니다. 이 로직을 진화시킨 건 애플의 스티브 잡스입니다. 아이폰과 앱 생태계는 고정 인터넷 생태계를 모바일 인터넷으로 진화시켰고 그로 인해 또 수많은 앱들이 먹고 사는 거지요.
#그 덕에 한국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가 카카오고요. 잡스 덕에 기술 트렌드 변화를 인지한 사람들은 많았을 겁니다. 모바일 1위 SK텔레콤의 그 똑똑한 임직원들이 어찌 그 트렌드를 몰랐을까요. 다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졌을까요. 배부르고 편해서 투쟁하지 않는 것도 이유는 되겠지요. 그런데 그게 다였을까요. 영웅이 있다면 스토리도 필요합니다. 상대가 나태해서란 뻔한 스토리 말고.
#카카오 첫째 스토리는 ‘공짜’입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했지요. 문자 하나에 10원이나 20원을 내야 하는데 그걸 공짜로 준다니 누군들 안 쓰겠습니까. 그렇게 할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데, 그런 사업을 안 할 이유는 또 뭐 있나요. 일단 사람을 모으면(큰 시장을 열면) 돈 될 구석은 너무나 많은데요. 카카오는, 너무 분명한 그 사실을 알고도 할 수 없는, 주도 사업자를 그걸로 저격한 거죠.
#둘째 스토리는 ‘확인’입니다. SKT가 아무리 연구해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딱 하나를 카카오에 덧붙였습니다. 메시지 작성자가 읽어야 할 사람한테 봤는지 안 봤는지를 물어보지 않아도 되게 한 겁니다. 봐 놓고 안 본 척 할 수 없게 만든 거예요. 알고도 모른 척, 쌩까면 염치없게 하는 솔루션을 적용한 겁니다. 그 솔루션이 일방적이지 않은 소통 창구를 제공하고 이용자는 그걸 선택한 거죠.
#벤처 카카오가 수년 만에 10조원 기업이 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 두 가지도 빠뜨리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처음에 본 건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기존 인터넷 비즈니스를 빠르고 섬세하게 모바일로 옮기면 승률은 최소 51%다, 그 정도지요. 김 의장이 최근 1년전까지 만 해도 몰랐던 것은 카카오야 말로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서비스였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단톡방에 답이 있습니다. 사실 단톡방은 10년 전 나카모토 사토시가 제기한 분산원장의 생생한 사례입니다. 사토시는 블록체인 기술이 현실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창안했지만 카카오는 그런 고민 없이도(그걸 알았을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서비스로 만들어 낸 것이지요. 단톡방 참여자가 블록체인의 노드는 아니자만, 노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생각해보십시오. 최소 3명 이상이 참여한 단톡방에서 했던 이야기를 누군가 부정하려 한다 한들 부정이 되겠습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부정하려는 자가 자신의 글을 삭제한다 해도 다른 모든 이한테 남아있는데요. 사토시의 주장처럼 카카오는 그 서비스 모델 자체로 이중지불을 방지하게 해놓은 겁니다. ‘공짜’와 ‘확인’이란 저격기술로 만들어낸 카카오에는 사실 노다지가 있었던 거죠.
#충분히 100조원은 됐을 기업이 10조원에 머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카카오 출범 때부터 블록체인을 감안했다면 더 큰 그림이 그려졌겠지요. 저격의 대상이 SK텔레콤에 머물지 않고 구글이나 아마존을 향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덧붙여져야 했죠.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등가원칙의 보상체계, 그리고 국내용이 아닌 글로벌 서비스를 위한 여러 가지 대책들 말이죠.
#그랬다면 돈을 투자할 곳은 많았을 겁니다. 꼭 20년 전 구글이 만들어졌을 때, 이곳에 투자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보다 3년 전 창업한 야후 등이 대세였으니까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처음 투자를 받기까지는 무려 350번 정도의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시할 때, 누구도 알아보지 않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걸 구글이 입증한 거죠.
#김 의장은 아무리 멀게 잡아 계산해도 고작 1년 전부터 블록체인을 다시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작은 돌부리로 치부했으나, 사실 인터넷과 모바일엔 없는 거대한 광산의 일단이 지표에 노출된 것이라는 걸 인식한 겁니다. 그리하여 5~6개월 전부터 그에 관해 광폭의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디 그걸 찾기 바랍니다. 그걸로 미국 실리콘배리와 제대로 맞장을 뜨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엉뚱하지만 이 글은 사실 카카오가 아니라 유시민 작가께 드리려 쓴 겁니다. 토론회에서 암호화폐를 저격하는 현란함을 지켜봤지요. 불과 며칠 공부하고 전문가 입을 무참하게 봉쇄하는 전투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요. 뛰어난 논객임을 안 지 이미 수십 년이니 그걸 어찌 부정하겠습니까. 빛나는 전투력도 보통사람을 위한 뜨거운 마음도 전혀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좋은 도구니까요.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며칠 공부하고 끝낼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요, 정치가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그래봐야 유령과의 싸움처럼 번번이 난장판이 되는, 보편복지라는 것에 대해, 이 두 가지가 훌륭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사기꾼도 들끓겠지만, 이 두 가지는 원자(原子)나 DNA에 비교할 수도 있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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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얼마나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 과정에서 치열했던 기술과 인류애에 대한 고민을 애써 무시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금 한국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가 지금 한국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을까요. 답답하고 답답해 유 작가님께 글을 써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