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대란과 4차산업혁명의 불길한 전조

[이균성 칼럼] 유령과 싸울 거라면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20 17:02    수정: 2018/11/16 11:16

담론이 클수록 그 논쟁은 어쩌면 유령과 싸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유령과 싸울 때 더 핏대를 올립니다. 어차피 서로 입증할 수 없으니 목소리나 완력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는 거겠지요. 그래서 유령과 싸울 때 학문은 더 없이 초라해집니다. 이념이나 종교와 관련된 논쟁이 그런 거겠지요. 믿음 앞에 과학이 설 자리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유령은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일자리 논란도 그런 유령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나 정부를 비판하는 쪽이나 유령과 싸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국면은 정부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책임지는 쪽이고 결과는 아주 안 좋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5개월 동안 수십 조 원을 일자리 창출에 쏟아 부었지만 결과는 참담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니까요.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완적인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를 비판하는 쪽에서 말하는 원인 분석이 꼭 옳은 것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최근 일자리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도’ 등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탓도 일부 있겠지요. 그러나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건 과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4차산업혁명 미래 모델 컨퍼런스

지금 검색 사이트에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그야말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기사가 삑삑 소리를 내며 경고음을 내왔습니다. 조선과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이 위기라는 경고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 주력 산업과 그로 인한 좋은 일자리는 이미 중병이 들어있었습니다. 다만 아주 많은 곳이 연명치료를 하며 근근이 버틴 것이겠죠.

여기서 또 하나의 유령이 등장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하 4차 혁명). 뜬구름 같아 보통은 잘 귀담아듣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유령과 대화하는 법을 더 익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령이야말로 우리 경제와 일자리가 중병이 들게 한 진범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아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는 이도 많은 것이 사실이고요.

4차 혁명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 경제와 일자리에 충격을 줍니다. 우선 빠른 속도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합니다. ‘고용 없는 성장’의 근본 원인입니다. 기업은 더욱 효율화하고 인간의 노동은 더욱 소외됩니다. 또 혁신하지 않은 기업을 도태시킵니다. 그동안 우리 수출 경제의 주역이었던 일부 제조업의 위기가 그것 때문입니다. 이 위기는 거의 지역경제를 초토화시킬 만큼 막대합니다.

문제는 4차 혁명이 쓰나미처럼 강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광범위하게 밀려오기 때문에 누구도 그 실체를 간단히 파악하지 못할 유령 같은 존재라는데 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쓰나미와 같아 좌(左)와 우(右)를 가리지 않습니다. 험악하게 쓸고 갈 뿐입니다. 그 범위가 넓고 강력하기 때문에 한두 기업이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나라가 통째로 총력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중장기적인 과제입니다.

정부든 정부를 비판하는 쪽이든 경제를 살리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다른 생각이 있을 리 없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론이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경제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애초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령 같은 그 과거의 방법론에 서로 얽매어 죽기 살기로 싸우다 미래를 망칠까 두렵습니다. 4차 혁명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혁신하지 않으면 모두 쓸어버리는 초특급 유령이니까요.

그래서 제안합니다. 어차피 유령과 싸울 거라면 과거 유령에 갇혀 대세를 그르치지 말고 신종 유령과 맞서 보라구요. 좌든 우든 서로 잘 모를 터이니 어찌됐건 같은 쪽을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합의도 쉽겠지요. 그 유령을 연구하다보면 정부가 부어야 될 마중물의 가치도 혁신성장을 이끌 펌프질의 필요성도 같이 찾아내지 않을까요. 그것이 과거에 갇혀 평행선만 달리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대통령께 제안합니다. 현재의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를 확대 개편하면 어떨까요. 당장의 현안에 여와 야가 쉽게 합의할 수 없다면, 4차위만큼은 문호를 대폭 개방해 건설적이고 큰 토론이 벌어지게 해 대계(大計)에 합의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러다 보면 그게 헌법은 아닐지언정 정권에 따라 쉽게 바뀌지 않는 10년 혹은 20년 가는 ‘경제사회 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합의된 대계가 있다면 다음 정부가 훨씬 수월하겠지요.